북한군은 전쟁 초기부터 유엔군에 제공권을 빼앗겼다. 비행기 같은 대량 살포 수단이 없어 북한군이 '적군 와해 공작'의 일환으로 뿌린 삐라는 유엔군에 비해 수량이 훨씬 적었다. 북한군의 삐라 367종 3억장은 주로 대포나 사람에 의해 뿌려졌다.
북한군 삐라의 주표적은 국군과 미군의 병사들이었다. '주검 속에서 헤매는 사병들의 가족은 굶고 있는데 호통과 향락만 일삼는 장교들의 가족은 잘 먹고 있다'며 갈등을 조장하는 식이다.
백인 헌병에 의해 폭행당하는 흑인 병사의 그림을 그려넣고 미군 내 흑·백 갈등을 조장하기도 했다.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에는 향수를 자극하는 삐라를 뿌려 군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려 했다. 애절하게 두 손을 모으고 있는 한복 차림의 여인 그림이 많았다. '강남 갔던 제비는 돌아오건만 국방군에 끌려간 내 낭군 언제나 오나?' '설은 설대로 돌아왔건만 배 곯고 얼어 떨며 죽어야 하나' '고향에 있는 아내와 어린 것들을 생각해 보라'는 내용이다.
귀순·투항을 권유한 삐라들도 많았다. 행복한 표정의 미군 포로들 사진을 넣고 '포로들은 이렇게 환대받는다'고 선전했다. '이 보증서를 가지고 오는 사람에게는 신변을 보호하며 우대할 것'이라고 적힌 조선·중공인민군 총사령관 명의의 '안전보증서'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