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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올림픽 크로스컨트리 처음 완주한 서보라미

namsarang 2010. 3. 21. 21:09

 

[밴쿠버 동계 장애인 올림픽]

장애인올림픽 크로스컨트리 처음 완주한 서보라미

 

"꼴찌 다툰 성적이지만 목표가 있어 행복해요"
최악 컨디션 이겨내고 13분이나 기록 단축
장애물투성이 세상보다 크로스컨트리가 쉬워… 4년 뒤에는 메달 도전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비록 꼴찌에서 두 번째였지만, 서보라미(24)는 이를 악물고 끝까지 두 팔로 눈밭을 지쳤다. 19일(한국시각) 열린 밴쿠버 동계장애인올림픽 여자 크로스컨트리 좌식 5㎞ 경기. 결승선을 통과한 서보라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동계 패럴림픽 사상 한국여자 크로스컨트리 선수의 첫 완주(完走)였다. "해냈어요." 경기 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서보라미의 목소리는 행복감에 들떠 있었다.

위기를 넘긴 빛나는 완주

4번째 순서로 출발한 서보라미는 50m도 지나지 않아 위기가 찾아왔다. 앞서 달리던 선수가 고개에서 뒤로 미끄러져 충돌할 뻔했다. 지난 15일 10㎞ 경기에서 상대 선수와 충돌하면서 스키가 부러져 경기를 포기했던 서보라미에게 닥쳐온 또 한 번의 아찔한 순간이었다.

서보라미는 침착했다. 미끄러지는 선수의 스키를 손으로 멈춰 세운 뒤, 스키를 옆으로 옮겨 레이스를 이어갔다. 지난해 월드컵과 15일 10㎞ 경기에서 연거푸 넘어졌던 '마(魔)'의 내리막 커브 구간(3㎞ 지점)도 무사히 통과했다. "그곳을 지나면서 '살았구나' 싶었어요. 이후론 죽기 살기로 앞만 보고 갔어요."

서보라미가 여자 크로스컨트리 5㎞ 좌식 경기에서 결승선을 향해 힘차게 눈밭을 지치고 있다. 서보라미는“이번엔 기록 단축으로 만족한다. 4년 후엔 꼭 메달을 따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1분46초4. 16명 중 14위(1명 기권)였지만, 지난해 3월 같은 장소에서 열린 월드컵 기록을 무려 13분이나 단축했다. 그것도 최악의 컨디션에서 일궈낸 결과였다. 서보라미는 지난 1주일간 설사와 복통, 구토에 시달렸다. 입술은 부르텄고, 원인 모를 피부병도 얻었다. "죽만 먹고 버텼어요. 딱 10분만 기록을 줄이자고 했는데 결과가 좋네요. 이런 기분이 성취감인가 봅니다."

서보라미는 코스를 완주하자마자, 자신을 위해 한국서 며칠째 불공을 드리고 있는 어머니에게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엄마 나 해냈어요."

삶의 뚜렷한 목표가 생겼다

서보라미는 지체장애 1급이다. 고3이던 2004년 4월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하반신 마비가 됐다.

"병실에 누워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어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죠. 근데 혼자 힘으론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도 없는 거예요. 그 절망감이란…."

그렇게 1년 이상을 방황하다 서보라미는 지극정성으로 딸을 돌보는 어머니 이희자(49)씨와 주위 장애인들의 모습에서 용기를 얻었다. "'어떻게 죽을까'란 생각을 '어떻게 살까'로 바꾸니 세상이 달라졌어요. 그러자 '뭐부터 해 볼까, 뭘 잘할 수 있지'란 생각이 꼬리를 물었어요."

2007년 입학한 평택대에서 스키 크로스컨트리를 처음 접했다는 그에게 '왜 힘든 걸 하느냐'고 물었다. "저는 눈앞에 계단만 있어도 머뭇거리게 돼요. 장애물 투성이인 제 인생에 비하면 크로스컨트리는 쉽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힘들지만, 그냥 두 팔로 눈밭을 헤쳐나가면 되니까요."

서보라미는 오는 22일 1㎞ 스프린트 경기에도 출전할 예정이라고 했다. 준비는 많이 못했지만 또 한 번 이 악물고 질주할 생각이다. 서보라미는 크로스컨트리가 자꾸 좋아지는 모양이었다. "뚜렷한 삶의 목표를 찾아 헤맸던 제가 밴쿠버에서 그걸 얻었어요. 4년 뒤 올림픽에선 메달에 도전하고 싶어요."

서보라미에게 고민도 없지 않다. 지난 1년간은 장애인스키협회의 지원을 받았지만, 귀국한 이후에는 다음 대표팀 소집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대표팀 동료 임학수는 실업팀 하이원 소속으로 급여를 받고 있지만, 서보라미는 소속팀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