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룡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선교, 전례사목부 담당)
명동성당을 나와 지하철 4호선 명동역까지 길게 늘어선 신자들 모습은 마치 그 어떤 악의 세력도 침범할 수 없게 '명동성지'를 작은 돌처럼 빙 두른 듯 했다. 항공사진이나 길게 옆으로 찍은 사진에도 질서있게 성당을 에워싼 모습이 성채를 보호하려는 신자들 신앙심을 그 자체를 드러내는 듯 했다.
지난해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님이 선종하셨을 때 추모 물결 얘기다. 이때 거의 40만 명에 달하는 신자들과 국민들, 국가 지도층이 조문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조문했을까? 그 이유는 그분의 소탈하면서도 강직한 성품,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 편에서 모든 노력을 기울이신 인격이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추기경님은 한국 가톨릭을 대표한 분으로, 40여년 동안 당신 사목 활동을 통해 가톨릭 성장에 큰 디딤돌을 놓으셨다. 그러므로 추기경님은 가톨릭 성장의 상징이다. 그렇기에 조문 숫자는 한국 가톨릭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그분이 보여준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사회에 이미 많이 퍼져나갔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어떤 한 시골 노(老) 사제는 강론 때 추기경님을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농촌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도농직거래를 통해 농촌에 활력을 불어줄 마음으로 추기경님께 편지를 썼다. 그런데 추기경님께서 직접 답장을 써 보내주셔서, 용기를 주셨고 당신의 힘이 닿는 한 도농직거래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추기경님의 자상함, 작은 응답 그리고 관심은 그 이후 '우리농촌 살리기 운동'과 같은 실천적 운동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이렇게 작은 사랑을 통해 그분을 기억하는 분들이 우리 사회에는 신자이든 미신자이든 매우 많다. 바로 그 사랑이 가톨릭의 상징이 된 것이라 사려 된다.
마지막으로 추모 기간 중 우리 국민이 그분의 위대한 사랑의 삶을 다시 볼 수 있었던 것은 방송의 힘을 통해서다. 지상파 및 케이블 방송은 5일 내내 추기경님 공적과 인간적 모습을 생생히 전했다. 중계방송, 다큐멘터리, 매 시간 뉴스를 통해서 추기경의 삶을 감동적으로 온 국민들에게 전했다. 매스컴의 힘은 엄청났다. 미신자들은 추기경님 선종을 통해 가톨릭을 알게 됐고, 가톨릭에 대한 긍정적 마음을 지니게 됐다. 가톨릭 신자들은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됐다. 이렇게 추기경님 선종은 한국 가톨릭의 면모를 국민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추기경님 선종으로 가톨릭이 한국사회에 뿌리를 내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 힘의 주체는 이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큰 인물을 닮고자 하는 우리 신자들의 작은 사랑의 실천이 엄청난 '복음화' 사건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한 사건이었다.
그래서 선교 곧 복음화는 우리 주변에서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실천과 행동이 모여 한국 사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가톨릭이 되는 것이다. 그 영향력이 방송과 신문을 움직였고, 매스컴을 통해 다시 국민에게 가톨릭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우리 작은 사랑은 이렇게 한번 표출되면 엄청난 동력과 영향력으로 드러난다. 이 사회를 정의와 사랑으로 바꾸라는 추기경님의 유언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교회는 복음의 메시지를 통해 마음과 정신의 변화를 수반하는 발전에 도움을 주는 해방의 힘을 주고, 각 사람의 품위를 인정케 하고,… 이웃에 대한 봉사를 하도록 하며, 마침내 이미 현세에서 시작된 평화와 정의의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려는 하느님의 계획안에 인간을 참여시킨다. (「교회 선교 사명」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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