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었던 1971년 7월 30일자 관보(官報)에는 건설부 고시(447호)가 슬그머니 하나 실렸다. 당시 이 관보를 눈여겨본 사람은 없었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서울 중심부에서 반경 15㎞ 라인을 따라 폭 2~10㎞ 구간을 '영구 녹지대'로 지정한다는 것이었다. 그린벨트 정책이 처음 시행된 것이다.그린벨트 지역에는 건물을 새로 짓는 것은 물론 택지 조성 등 일체의 개발행위가 금지됐다. 당시 그린벨트로 지정된 곳은 지금의 서울 우면동·세곡동 일대는 물론 시흥·고양·광주·하남·인천 일대의 녹지대 440㎢가 1차 대상지역이었다. 그 결과 지금도하남시는 전체 면적의 90%가량(84㎢)이 그린벨트로 지정돼 있다. 역사적인 그린벨트 정책이 발표되는 순간이었지만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이 아니어서 당시 기자들도 이 사실을 몰랐고, 땅 주인도 이 내용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달여 뒤 이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그린벨트로 지정된 지역의 땅값이 3분의 1, 4분의 1 수준으로 폭락하기 시작했다.
지금 같았으면 거의 '민란' 수준의 반발과 소송이 이어졌겠지만, 당시만 해도 군사 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이어서 그린벨트 정책은 거침없이 추진됐다. 이후 정부는 8차례에 걸쳐 1977년 4월까지 수도권과 부산·대구· 여수 등 전국적으로 총 5379.1㎢(국토의 5.4%가량)를 그린벨트로 지정했다.
그린벨트 정책은 사유재산권 침해논란이 있었지만 팽창하던 개발의 물결로부터 녹지공간을 지켜준 최후의 보루였다. 박 대통령은 그린벨트 지정 결재서류에 "그린벨트에 관한 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반드시 대통령의 결재를 받도록 하라"고 적어넣을 정도로 이 문제를 직접 챙겼다.
그린벨트 정책의 시초는 영국이다. 1580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런던 외곽 3마일(4827m) 이내는 새로운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포고령을 내린 것을 그린벨트의 시작으로 보는 학설이 정설로 인정받고 있다.
그린벨트 정책은 1980년 중반 이후 도시가 팽창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도시 용지 부족현상이 심각해지고, 땅 소유주들의 집단적인 반발이 시작됐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1월 경기 안산·시흥시의 시화산업단지 933만㎡가 그린벨트로 지정된 지 29년 만에 가장 먼저 해제됐다. 이후 급등하던 수도권 집값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그린벨트를 해제해 이곳에 저렴한 아파트를 짓는 방식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수도권 그린벨트를 풀어 국민임대주택단지를 짓기 시작한 데 이어,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보금자리주택 지구로 지정하고 있다. 2001년 1월 이후 10년 사이 전체 그린벨트의 4분의 1가량인 1471㎢가 해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