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일현·'나와 6·25' 기획팀장
취재팀은 모두 전쟁을 직접 겪지 못한 세대다. 그래도 수많은 사건·사고를 취재하고 기사를 썼던 경험을 가진 기자들이다. 김씨의 사연은 그런 우리의 상상의 한계를 넘는 참혹함을 갖고 있었다.
김씨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취재팀은 이 소름 끼치는 사연의 사실 여부를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기자 한명이 김씨의 고향인 전북 고창 지역에 내려가 주민들을 상대로 취재를 했다. 결론은 신문에 보도된 대로 모두가 사실이었다.
본지가 지난 2개월 반 동안 연재한 6·25전쟁 60주년 특별기획 '나와 6·25'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 조상과 우리 자신이었다. 전쟁 때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한 군인은 62만여명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100만명에 가까운 민간인이 죽거나 부상을 당하거나 행방불명이 됐다. 당시의 남한 인구는 약 2000만명 정도였다. 가족과 친·인척까지 따지면 주변에 전쟁 때 죽거나 다친 사람이 한 명 없는 집안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기획 시리즈가 연재되는 동안 우편·이메일로만 1500여건이 넘는 사연이 접수됐다. 직접 찾아오거나 전화를 걸어온 분들도 수백명에 달했다. 이는 조선일보가 가장 많은 독자를 갖고 있는 신문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전쟁에 얽힌 사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취재팀은 생각했다.
전쟁을 기억하는 세대의 많은 사람이 그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마음 깊숙한 곳에만 담고 있었다. 먹고 살기에 너무도 정신없이 바빴고, 괜히 나이 먹은 사람이 넋두리한다는 핀잔을 듣고 싶지 않았다고 말하는 분들이 여럿 있었다. 또 아직도 당시 기억이 너무 생생하고 무서워 말을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앞에서 말한 김씨도 본지를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사연을 밝히는 것이라고 했다. 자녀들에게조차 올해 들어서야 사연의 아주 일부분만 말해줬다고 한다.
그들이 말문을 여는 순간, 전쟁 경험자들의 시대 경험이 사연을 읽는 젊은 전후(戰後) 세대 독자들과 급속히 교차해가는 것을 취재팀은 느낄 수 있었다. 많은 독자가 눈물을 닦으며 신문을 읽었다고, 또 선배와 부모님 이전(以前) 세대의 아픔과 고통을 알게 됐다고 전화를 걸어왔다. 그들은 자신을 초등학생과 주부, 직장인, 군인, 해외교포라고 했다.
본사에 찾아온 나이 지긋한 노인들은 4~5시간 동안 '옛일'을 털어놓고는 이제야 홀가분하다는 듯이 "고맙다"는 말을 뒤로하고 떠났다. 하지만 취재팀은 오히려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또 살아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선대(先代)가 있었기에 우리가 있다'는 평범한 진리가 대한민국의 수많은 가정에선 기적적인 역사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