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길시 전 분당중 교장
'나와 6·25' 공모 기사가 났을 때, 내 딴에는 기막혔던 내 얘기를 써 볼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신문에 연일 나오는 너무나 엄청난 사연들을 읽으면서, 소꿉장난 같은 내 얘기는 얘깃거리 축에도 못 끼겠기에 그만두었다. 어찌 신문에 나온 얘기들뿐이랴! 그때 이 땅 위에 발붙이고 있던 사람이라면 가슴 아린 얘깃거리 한두 가지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어찌 우리나라 사람뿐이랴! 먼 이역의 땅에서 달려와 남의 나라 사람과 자유를 지켜주려고 피 흘리며 싸운 외국의 젊은이들은 또 얼마인가.
요즘 궁색함을 모르고 꿈과 낭만을 그리며 자유롭게 자라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린 시절을 6·25에 강탈당한 우리는 억울하고 부럽기 그지없다. 전쟁 동안뿐 아니라 그 후로도 전쟁의 후유증과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전쟁이 다시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긴장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했다. 1980년대 이후 경제가 조금씩 좋아지고, 세계가 열려 다른 나라 사람들의 생활을 보면서, 6·25 때문에 그동안 우리가 정말로 어렵고 힘들게 살아온 것을 알게 되었다.
며칠 전 전쟁기념관에 다녀왔다. 전시장을 도는 동안 아린 상처들이 되살아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피란민 행렬의 사진에서, 그때 그 고생을 하며 목숨을 걸고 월남한 사람들은 참으로 선견지명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만약 남침을 막아내지 못하여 이 땅이 모두 공산화되었다면 어찌 됐을까 아찔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지난 10여년 엄청난 경제적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천안함을 침몰시켜 수십명의 젊은 목숨을 앗아가고 전쟁을 들먹이며 불안을 조성하는 저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60년이 지난 지금도 저들의 야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생각하면 그동안 풀어졌던 우리의 다짐을 새로이 해야겠다. 그래서 지금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전쟁기념관을 가봤으면 한다. 특히 전쟁을 겪지 않았던 젊은 세대들은 지금 이 자유와 번영과 풍족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를 깨달았으면 한다. 단지 사진, 모형에 불과할지라도 보고 느껴야 한다.
그래도 오늘 마음 한구석이 든든했다. 관람객의 대부분이 학생들과 젊은 청년들이었다. 진지한 모습으로 사진과 모형을 들여다보며 글을 읽고, 안내원의 설명을 듣는 모습이 믿음직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