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성지순례는 돈과 시간이 있다고 해서, 또한 체력과 건강이 있다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 은총이 있어야 합니다."
몇 해 전 성지순례 중 한 가이드에게 들은 말이다. 처음에는 흘려들었지만 그 말씀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성지순례도 여행이다. 흔히 집 떠나면 고생이라 한다. 맞는 말이다. 특히 여행에서 먹고 자는 것에 제약이 있으면 더 그렇다. 또한 일정기간 단체생활을 해야 한다. 단체생활의 기본수칙은 모름지기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학창시절 담임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다 착하고 좋은데 모아 놓으면 꼭 그 중에 한두 사람이 말썽을 부린다."
성지순례도 단체여행이니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때가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면 좋은 감정이 생길 리 없다. 성지순례는 피정의 성격도 함께 지니고 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이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도 한편으로는 영적 발전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서로가 인내심을 갖도록 노력해야 하고 그러니 기도를 열심히 할 수밖에. 나중에는 모든 게 감사하고 고맙게 느껴진다.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면 여유가 생기고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여행이 즐겁고 유쾌한 이유는 뭐니뭐니 해도 일상의 삶을 잠시나마 떠날 수 있어서가 아닐까. 매일 반복되는 쳇바퀴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 넓은 산과 바다, 자연을 보는 것 자체가 경이롭다. 그래서 여행 중에는 자연히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 시야도 넓어진다.
더구나 성지를 순례하다보니 그 느낌과 감동은 각별한 것 같다. 성경에 나오는 땅을 직접 밟아보는 것은 신앙인에게는 아주 특별한 체험이 된다. 순례 중에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결국 그 시선이 나 자신에게 돌아오는 체험을 한다. 그러다보면 성지순례는 어느새 나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된다. 물론 그 모든 여정 안에서 주님께서 함께해주신다. 나에게 성지순례는 어떤 의미인가 생각해 본다. 먼지에 가려 뿌옇게 보이던 것이 맑고 투명하게, 또렷하게 보이는 것과 같다고 할까.
얼마 전 동생 신부가 안식년을 이용해서 40여 일간 스페인 산티아고 도보성지 순례를 다녀왔다. 처음에는 일행 여럿이서 함께 걷기 시작했는데 걷는 속도가 달라 나중에는 두세 명씩, 며칠 후에는 혼자서 걷게 됐다고 했다. 날씨가 좋은 때도 있었지만 비를 맞으며 하루종일 인적 없는 길을 혼자 가는 날도 많았단다. 그런데 혼자서 걷는 날은 침묵 중에 더 많은 묵상과 기도를 할 수 있어 더 좋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혼자서 길을 걸을 때 내가 아는 사람들을 하루에 한 사람씩 기억하며 종일 그 사람을 위해 기도했어요. 며칠을 그렇게 기도하며 걸으니 이상하게도 더 이상 혼자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죠."
그렇게 며칠을 혼자 걷던 동생 신부는 어느 숲길을 지나다가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났다고 했다. "순간 내가 아버지 어머니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었구나 싶었어요." 그때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난생 처음 걷는 그 길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아버지 어머니와 회포를 나눴을 동생 신부의 모습을 가만히 짐작해볼 뿐이었다. 그러자 예수님 부활 사건이 떠올랐다. 제자들의 부활 체험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 생각을 하니 우리가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믿음을 가졌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동생이 무척 부럽고 대견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난 3월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과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공동 주최한 '사제의 해 기념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부족하나마 글을 통해 나의 미소한 성지순례 체험을 나누려고 한다. 단 한사람에게라도 감동을 나눌 수 있다면 큰 기쁨이 될 것이다. 글을 시작하려하니 다시 성지순례를 떠나는 것처럼 설렌다.
▲사제의 해 기념 성지순례기 '성경의 땅을 가다' 연재로 '성경속 상징'은 당분간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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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제의 해 기념성지순례' 도중 그리스 남쪽 끝 수나온곶 포세이돈 신전이 바라보이는 언덕에서 포즈를 취한 허영엽 신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