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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러는 우리의 약점을 읽고 있다

namsarang 2010. 6. 16. 21:24

[박두식 칼럼]

북·중·러는 우리의 약점을 읽고 있다

             ▲ 박두식 논설위원

천안함 사태를 통해 북에 대해 '단호하게'와 '단호하지 않게'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한국의 약점이 또 한 번 드러났다 진짜 위기는 지금부터다

1차 북한 핵위기가 한창이던 1993년 말의 일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당시 한국 정부의 대북(對北) 정책을 가리켜 "단호하되, 너무 단호하지 않게(firm, not too firm)라는 모순에 빠져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 정부가 북한 문제만 나오면 '단호한 대응'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실제 단호한 조치를 취할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한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면서도, "북한 핵 저지에 무력 사용은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북한 핵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면 그 해결을 위해 '무력수단'도 배제하지 않는 것이 논리적으론 맞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무력'이란 말을 입에 올리기도 쉽지 않다. 1차 북한 핵위기 때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국민들이 심각한 안보 상황을 너무 모르고 있다"고 말하자 곧바로 '라면 사재기' 소동이 벌어졌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천안함 대응 조치에는 무력의 '무(武)'자도 들어 있지 않은데도, 주가와 환율이 요동쳤고 "이명박 정부가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는 주장이 먹혀들었다. 이런 상태에선 북한의 도발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단호하게'와 '너무 단호하지 않게' 사이를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한국 동서대학에 재직 중 인 브라이언 마이어스 교수의 글을 메인 칼럼으로 실었다. 동서대는 천안함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고(故) 문영욱 중사의 모교(母校)다. 마이어스 교수는 "문 중사의 급우(級友)들이 성금 모금 운동을 벌였지만 대학 캠퍼스의 어느 누구도 북한 김정일에게 분노를 드러내지 않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약한 대북 제재를 발표했는데도, 나라 전체가 손을 부들부들 떠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인들은 한민족에 대한 의식은 강하지만, 대한민국에 대한 일체감은 약하다"며 "천안함 사건은 남북관계 악화가 부른 사태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마당에 (한국 내 분위기를 고려하지 않고) 미국이 북한에 벌을 주려고 하면 오히려 역효과만 낳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 내 분위기를 볼 때 미국이 굳이 대북 강경론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천안함 사태는 점차 한국의 약점을 세계에 드러내는 사건으로 뒤바뀌고 있다. 피해 당사자인 한국이 우물쭈물하고 내부가 분열돼 있는 상태에서 세계 어느 나라도 우리를 대신해 북한에 벌(罰)을 주는 악역을 맡겠다고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대북 제재 논의에 들어간 유엔 안보리(安保理) 분위기가 그렇다고 한다.

천안함 사건을 놓고 중국과 접촉해 온 우리 외교관들의 말을 종합하면, 중국은 천안함 진상 조사 결과에 대해선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국제조사단이 내놓은 천안함 조사 결과를 놓고 한국과 다툴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중국은 대신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협하는 행동을 삼가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한 외교관은 "중국의 이 말은 북한은 무슨 일을 벌일지 예측하기 힘든 존재이니 한국이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일부 중국 인사들은 "한국이 정말 북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취하진 못할 것"이라고도 했다는 것이다. 러시아 역시 점점 태도가 애매해지고 있다.

북한도 한국의 이런 약점과 고민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북한은 며칠 전 북한 경비대가 중국인 밀수업자 3명을 사살(射殺)한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관련자 엄벌과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북한에 엄중 항의한다"고 나서고 중국 언론들이 들끓자 사건 발생 일주일 만에 백기(白旗)를 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2008년 7월에 발생한 금강산 관광객 사살 사건이나,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우리 장병 46명이 목숨을 잃은 천안함 사건에 대해선 사과는커녕 기본적인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중국의 '분노' 앞에 금방 무릎을 꿇은 것과 달리 대한민국이 밝힌 '단호한 대응'에는 '더 큰 도발 위협'으로 맞서고 있다.

한 나라의 외교와 안보가 이런 식으로 한 번 크게 약점을 드러내게 되면 두고두고 그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상대가 이 약점을 알게 된 이상 계속 물고 늘어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천안함 사태가 불러온 진정한 위기는 지금부터다.
 

[동서남북]

꿈도 꾸기 어려운 초당적 안보

          강인선 정치부 차장대우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이 14일 유엔 안보리 이사국들을 상대로 조사결과를 브리핑했다. 북한도 이 자리에서 "우리가 전혀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하니 우리가 피해자"라는 주장을 폈다. 이미 중국의 애매한 반응에서 경험했지만, 국제사회의 분위기는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천안함 장병 46명을 잃은 우리의 안타까운 심정과는 약간 다르다. 유엔에선 '사실'과는 별개의 또 다른 '국제정치'가 있다. 인내심을 요구하는 지루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국제사회에 우리 입장을 납득시키려면 과학적인 조사를 국가적 신뢰로 뒷받침해야 한다. 중앙의 권력도 없고, 영원한 우방도 적도 없는 국제무대에서 그 누구도 우리의 안보 이익을 제 일처럼 지켜주지 않는다. 그런 현실을 알기 때문에, 평소엔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선진국 여·야 정치인들도 안보문제가 걸리면 '초당적 협력'의 깃발 아래 힘을 합해 국제사회에 지지를 호소하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외교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쉬운 게 이런 문제라는 걸 알기 때문에 총력전을 벌인다.

그러나 지금 우리 정치엔 '초당적'이란 단어가 없다. 일단 야당에선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믿고 싶어하지 않는다. 민·군은 물론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등 외국 전문가들까지 참여한 조사결과를 인정해 외국 의회에선 북한을 규탄하는 결의안이 나오는데, 우리 야당에선 "북한의 어뢰공격인지 확실히 알 수 없으니 조사를 더 해보자"고 한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최근 "우리가 정부 발표를 부인하진 않는다. 현재는 정부가 북한이 했다니까 그럼 북한이 했다고 치자"고 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도 "믿지 못하겠다는 게 아니라 더 조사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끝까지 애매하게 꼬리를 남긴다. 북한의 '불바다' 협박을 비판하면서도 '정부가 잘못해서 북한이 저러는 것'이란 논리를 덧붙인다.

야당이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안을 위해 뛰는 정부를 '초당적으로' 밀어줄 가능성은 없었다. 대신 '조사를 왜 서두르느냐. 미국의 9·11 테러 땐 3년 걸려 조사결과가 나왔다'는 주장을 편다. 그러나 미국은 9·11 직후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했고, 여·야는 그야말로 초당적으로 정부를 지원했다. 9·11 조사위의 활동은 나중에 미국이 왜 그런 테러공격에 취약했는가를 포괄적으로 조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야당은 감사원의 '천안함 침몰사건 대응실태' 감사 결과를 근거로 군을 비판하고 있다. 감사원의 조사로는, 군은 천안함으로부터 "어뢰피격으로 판단된다"는 보고를 받고도 상급기관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또 사건 당시 속초함이 "북 신형 반잠수정으로 판단된다"고 보고했는데, 2함대가 이를 상부에 '새떼'로 보고하도록 지시해 '허위보고'를 한 게 됐다. 야당이 감사원 감사 결과를 믿는다면, 그건 천안함 침몰의 진실, 즉 '북한의 어뢰공격'이라는 걸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야당 정치인들의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짜집기식' 대응은 계속되고 있다. 정말 이 땅에선 '초당적 안보'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천안함 침몰로 전사한 고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가 최근 청와대에 1억원의 방위성금을 기탁하면서, "정치하시는 분들은 제발 안보만큼은 하나 되고 한목소리가 돼 주시기를 부탁한다"고 했다. 정치인들에게 이만큼 뼈아프게 '초당적 협력'의 의미를 가르쳐주는 목소리는 없었을 것이다.
 
 

[사설]

천안함 어머니 1억원 안보 성금과 참여연대의 헛소리

 
천안함 폭침(爆沈)으로 전사한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67)씨가 14일 청와대에서 국가 안보에 써달라며 1억원의 성금을 전달했다. 16개 보훈 단체 대표와 국가 유공자 유가족 700명이 참석한 오찬 자리에서였다. 윤씨는 국민이 모아준 성금에서 만든 1억원짜리 수표가 든 봉투를 사전 의사 표시 없이 청와대 안보특보에게 맡겼다. 윤씨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대통령님, 1억원은 비록 적은 돈이지만 우리 영해와 영토를 한 발짝이라도 침범하는 자들을 응징하는 데 사용해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부탁했다.

북한의 어뢰 도발로 34세 막내아들을 잃은 윤씨는 충남 부여군 은산면 시골집에서 부군 민병성(71)씨와 함께 농사를 짓고 있다. 평소 윤씨는 "부자에 비하면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에 비하면 부자"라며 "빚지지 않고 살면 부자"라고 했다고 한다. 윤씨 부부의 세 아들 중 막내였던 민평기 상사는 1997년 해군에 입대해 지난해 2월부터 천안함에서 근무했다. 미혼인 막내를 졸지에 가슴에 묻은 윤씨는 "국민의 애도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이런 일이 또다시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했다. 윤씨의 큰아들은 "어머니가 결정하신 뜻을 자식 된 도리로서 따르는 게 당연하다"며 "액수가 적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윤씨는 막내아들의 모교인 부여고에서 학생들이 걷은 성금 120만원을 가져오자 "어려운 부모들이 시골에서 자식 가르치려면 피땀을 흘리는데 내가 그 돈을 어떻게 받겠느냐"며 30만원을 얹어 되돌려주기도 했다.

윤씨는 천안함 희생 장병 영결식 때 억울한 심정을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에게 털어놓았었다. 그러나 강 대표는 방송 출연에서 "정부와 한나라당이 북한 소행이라고 몰아붙이니까 할머니가 그렇게 생각하신 것"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었다. 손녀를 통해 그 소식을 들은 윤씨는 "난 일개 촌부(村婦)로 일자무식이지만 내 아들이 왜 죽었는지는 안다"고 했다. 천안함 유족들은 참여연대가 유엔 안보리에 정부의 천안함 조사에 의혹이 있다는 편지를 보낸 데 대해 "희생 장병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며 분노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엉뚱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 정치인과 단체들은 "정치하시는 분들 제발 안보만큼은 하나 되고 한목소리로 돼 주시기를 부탁 드린다"는 윤청자씨의 호소를 아프게 들어야 한다.


[오늘의 사설]
[참여연대 항의 방문한 천안함 유가족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