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13주일-낮아질수록 드러나는 하느님 은총

namsarang 2010. 6. 27. 14:55

[생활 속의 복음]

 

연중 제13주일-낮아질수록 드러나는 하느님 은총


                                                                                                                                                         홍승모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오늘 전례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부르심에 대해 이렇게 정의합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갈라 5,13).

 이 말씀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우리를 죄의 굴레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크신 은총을 깨달으려는 우리의 작은 마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부르심은 바로 이 주님의 은총을 체험하는 것이며, 이 은총을 사랑 안에서 형제들과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르심의 여정을 가다보면, 자신이 얼마큼 낮고 작아져야 주님의 크신 은총이 드러나는지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자신을 드러내려는 교만한 마음은 주님의 길을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분별없는 열정은 사람을 파멸시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제자들은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마리아인들에게 허세를 부리고 싶어 합니다.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시기를 원하십니까?"(루카 9,54)

 제자들 태도는 자신을 홀대하는 사마리아인들을 향한 맹목적인 감정에 치우쳐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과 똑 같은 행동을 보인 것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주님의 모습 속에서 낮고 비천한 메시아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루카 9,53). 그러나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주님의 여정이 영광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주님을 따르는 자신들이 누구인지 은근히 드러내고 싶어하는 교만한 허세 속에서 돌출적인 발언을 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첫째 자리에 앉혀달라고 청했던 제자들이기도 합니다(마르 10,35-45).

 진정한 죄는 주님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 아버지의 겸손하고 작은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다는 우리는 정작 자신의 영광과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먼저 지내야 한다는 사람이나(루카 9,59),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해야 한다는 사람이나(루카 9,61)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인간적 바람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답변은 확고합니다. 개인적 영광과 집착이 없어져야 그 안에 주님이 현존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고 오히려 자신이 만든 그 처지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루카 9,58)는 말씀은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얼마큼 낮고 작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뜻하기도 합니다. 만일 어떤 친구가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들고 찾아오면, 우리는 놀라고 기쁜 마음으로 고맙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족에게는 그렇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이 어쩌다 베푼 작은 친절에는 고맙다는 말을 잘하면서도, 정작 누구보다 감사해야 할 가족에게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들에게는 당연하다고 여기거나 오히려 투덜거릴 때가 더 많습니다. 그 이유는 가족이란 내가 어떻게 하든 늘 거기에 붙박이처럼 있는 작고 낮은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 믿음도 이럴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찾을 때면 언제나 거기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별로 새로운 감흥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주님을 따르려는 마음이 시간과 함께 퇴색해 버린 것입니다. 신앙은 정원과 같아서 풍요롭게 가꿀 수도 있지만, 거친 들판처럼 버려둘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버려진 황폐한 마음은 삶에서 부딪히는 곤경과 시련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지탱해주는 주님의 영적인 은총을 신뢰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어디든지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내심으로는 작은 자리가 아니라, 영광의 자리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려는 우리 의지가 애착이나 소유로 가득하다면, 우리는 낮고 작은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드러나는 하느님의 크신 은총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부르심의 방향은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이 아니라, 세상의 영광을 위한 여정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차원으로 한 걸음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주님 은총인 것입니다.

 “저를 타일러 주시는 주님을 찬미하니 밤에도 제 양심이 저를 일깨웁니다. 언제나 주님을 제 앞에 모시어 당신께서 제 오른쪽에 계시니 저는 흔들리지 않으리이다(시편 16,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