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15주일-이웃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

namsarang 2010. 7. 11. 12:27

[생활 속의 복음]

 

연중 제15주일-이웃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


                                                                                                                                                             홍승모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우리는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율법주의적 사고를 넘어서서 공동체 안에 힘없는 작은 이들을 향해 항상 열려있는 주님 사랑을 체험합니다. 경직된 율법주의적 사고는 오히려 한계에 부딪히고 주님이 원하시는 길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 사랑은 율법을 넘어서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이들을 받아들이게 인도합니다.

 어떤 경우에 주님 사랑의 깊이는 너무 커서 우리가 그렇다고 늘 믿어왔던 사고의 경계선을 허물어 버리기도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이런 깊은 생각과 행동은 주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가늠할 수 없고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에게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우리는 세상의 길에 휩싸여 주님의 뜻을 올바로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거룩한 사제와 레위는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길 반대쪽으로 피해서 지나가 버립니다. 예루살렘은 주님 현존을 상징하는 거룩한 곳입니다. 그에 비해 예리코는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세상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사제와 레위는 세상 사람들이 걸어가는 똑같은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현존에서 멀어질수록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거기에 맛 들여 우리는 주님에게서 멀어져 자신을 숨기고 싶어 합니다. 주님에게서 도망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도 나오듯이 주님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우리를 더 깊은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루카 15,20).

 우리가 의도적으로 주님에게서 멀어졌든지, 아니면 주님에게서 버려졌다고 느끼든지, 주님은 우리를 만나기 위해 다가오십니다. 바로 착한 사마리아인에게서 우리는 주님 얼굴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법정 스님이 만남에 대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더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할 것을 거듭거듭 다짐한다. 내가 살아오면서 이웃에게서 받은 따뜻함과 친절을 내 안에 묵혀 둔다면 그 또한 빚이 될 것이다. 그리고 뭣보다도 내 괴팍하고 인정머리 없는 성미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끼친 서운함과 상처를 보상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어느 날 내가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이 나를 만난 다음에는 사는 일이 더 즐겁고 행복해져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을 만난 내 삶도 그만큼 성숙해지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행동은 우리가 갖고 있던 모든 편견을 무너지게 합니다. 강도를 만난 사람과는 무관하고 다른 부류라고 여기던 사람이 오히려 참된 이웃이 돼 주었을 뿐 아니라 그 사람이 겪은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착한 사마리아인은 어떤 이유에서든 사제와 레위가 방관하고 외면했던 이웃의 고통, 엄격히 말하면 그들 죄를 대신 짊어지고 순례 여정을 계속합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사제와 레위의 여정과는 반대로 예리코에서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을 가고 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주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입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에게서 우리는 세상의 죄와 악을 짊어지고 가시는 주님의 또 다른 얼굴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율법 교사에게 명확하게 요청하십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교회 공동체는 말만이 난무하는 새로운 천년기의 꿈을 표상하는 곳이 아닙니다. 실행이 결여된 말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율법 교사가 답변했던 지식이 그저 말만으로 그친다면 그것은 한계에 부딪히고 말 것입니다.

 "사실 그 말씀은 너희에게 아주 가까이 있다. 너희의 입과 너희의 마음에 있기 때문에, 너희가 그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신명 30,14).

 결국 누가 우리 이웃이냐는 율법 교사의 질문은 누가 우리를 사랑하느냐는 사랑의 실행과 관련이 있습니다. 남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과 행동처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남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과 행동이 없이는 결코 행복한 세상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과 행복을 주님에게서 받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통 받는 이웃에게 힘든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행복과 희망의 빛이 돼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착한 사마리아인이라면, 우리는 바로 강도를 만나 옷을 벗기고 초주검이 돼 세상에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