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정(의정부교구 청소년사목 7,8지구))
자정쯤 주일학교 교사 한 명과 기타를 멘 고1 남학생 한 명이 나를 찾아왔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유쾌한 일은 아닌 듯했고, 갑작스런 긴장이 엄습해 오는 것이 오늘 예수님께서 내게 뭔가 묵직한 건수를 택배로 보내신 듯했다. 내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게 그 자리에서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피곤함이 몰려왔지만 애써 웃으며 "오! 그래 어쩐 일이야?"하고 묻자 아이를 데려온 교사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 녀석이 원래 음악을 좋아하는데 집에서는 대학 가라고 하고, 계속 반항하니까 아버지께서 집을 나가라고 했대요. 저한테 왔는데 뾰족한 수가 없어서 혹시나 신부님께서 오늘 하루만이라도 재워주실 수 없는지 해서…."
참으로 난처했다. 교사를 보며 속으로 '그냥 선생님네 집에서 재워주면 안 될까?'하고 묻고 싶었지만 교사가 눈치를 챘는지 묻기 전에 설명을 했다.
"저희 집에 재우고 싶어도 자리가 없어서요."
일단 들어오라고 하고, 이야기 좀 듣자고 했다. 말이 통 없던 녀석은 다양한 질문에 계속 같은 말만 반복했다.
"그래, 아버지께서 왜 집을 나가라고 하신 거야?"
"저는 음악을 하고 싶은데, 아버지가 반대를 하셔서…."
"그렇다고 이렇게 무작정 나오면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건데?"
"저는 그냥 음악을 하고 싶을 뿐인데…."
"아버지는 왜 반대하시는 거야?"
"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제 음악을 하고 싶어요!"
"……"
집에서도 걱정을 하고 계실 테고 나도 형편상 재워주기는 어려웠다. 이리저리 연락을 해서 잘 곳을 찾았고, 데려온 교사에게는 아이 어머니에게 연락을 취해 걱정을 덜도록 조치했다.
사실, 이 정도의 일은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다. 얼마 전, 또 다른 녀석은 어마어마한 욕설을 하며 성당에서 난동을 부렸다.
난 꼬박 3시간 동안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장시간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내 정신이 혼미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이야기를 다 마친 아이는 지쳤는지, 미안했는지 울기 시작했다. 역시 아버지와의 갈등이 원인이었다.
요즘 10대들이 점점 무서워진다는 말은 말장난일 뿐이다. 자식들 마음을 깊이 이해해주고 들어주는 아버지들이 사라지는 현상이 무서운 것이지, 10대들은 똑같은 10대일뿐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숨죽여 우는 청소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또 어디에선가는 마음의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이 죽음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그저 1시간 만이라도 그들의 마음을 받아주면 되는데…. 말하는 아버지보다는 듣는 아버지가 참으로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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