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정 신부(의정부교구 청소년사목 7,8지구 담당)
평소 알고 지내던 자매님이 한 가지 부탁을 해왔다. 자신이 봉사를 나가는 가정이 있는데, 그 가정의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을 만나달라는 것이었다.
사연인즉슨 그 집 아버지는 중풍으로 일절 거동을 못하고 있고 어머니가 나가서 돈을 벌어오는 상황인데, 아이가 사춘기가 됐는지 학교도 나가지 않고 하루종일 집에서 인터넷 게임만 한다는 것이다.
아이는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본당에서 복사도 열심히 서고, 학교도 꼬박꼬박 잘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반항 정도가 심해지면서 어머니가 많이 힘들어 한다고 했다. 자매님은 그 아이를 잘 설득시켜 다시 학교도 열심히 나가고 복사도 설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난감했다. 난 본당 사목자도 아닌데…. 난처하다는 표정을 짓자 그 자매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신부님이 밝으시니까 그냥 한 번만 만나주세요! 호호~"하며 가버렸다.
고민에 빠졌다. 단 한 번 만남으로 아이를 게임 중독에서 해방시킬 수 있을까? 그 아이에게 기쁨과 희망을 찾아주고 그 가정에도 안정과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사실 주일학교 교사 양성을 주 임무로 하는 특수사목 사제인 나에게 '청소년 관련 일'이라며 여러 가지 부탁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 "신부님은 성격도 밝고 웃음이 많으니까 애들도 잘 따를 거예요"라는 말도 자주 듣지만 사진에서 보듯이 난 이쪽 일을 하며 얼굴이 많이 상했다. 내 나이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참 선배인 신부님과 동기냐고 하는 이야기도 듣곤 한다.
이리저리 궁리를 하다 결론을 내렸다. 이건 내 능력 밖의 일이다. 주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빵을 나눠주시지 않았던가?
그 친구를 불러 점심이나 먹자고 했다. 아이와 함께 패밀리 레스토랑에 갔다. 가격이 만만치 않다. 물론 나는 따로 음식을 주문하지는 않았다. 열심히 먹는 녀석에게 맛이 어떤지 물어봤다.
아이가 "이런 데는 처음 와봐요"라고 답했다. 맛있냐고 물었는데, 이런 데는 처음 와본다는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그렇지! 맛도 중요하지만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을 뿐 아니라 친구들에게 자랑할 거리가 생겼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이 작은 아이는 모든 상황을 온전히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의 눈에서 한순간 눈물이 떨어졌다. 나도 눈물이 나서 괜스레 창밖을 바라봤다.
'아, 참으로 날이 좋다. 주님, 저 밥 먹을 때 이런 분위기 처음이에요. 이런 데는 처음 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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