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일기

삼겹살과 감자탕의 자격

namsarang 2010. 6. 5. 21:55

[사목일기]

 

삼겹살과 감자탕의 자격


                                                                                                                                        홍석정 신부(의정부교구 청소년사목 7,8지구 전담)


   본당 대항 청소년 성가ㆍ댄스 경연대회가 성황리에 끝났다. 아이들 열기는 시종일관 뜨거웠다. 모든 학생이 참가하는 '작은 잔치'에 비해 성가ㆍ댄스 경연대회는 특정 학생들만 무대에 서는 것이라 참여율이 저조할 줄 알았는데 거의 두 배 가까운 학생들이 참석해 열띤 공연과 응원을 펼쳤다.

 행사를 마친 후, 가톨릭청소년연합회(CYA) 학생 14명과 저녁식사를 했다. 맞은 편 다른 음식점에서는 담당 교사들이 식사를 했다. 교사들은 삼겹살을 먹고 있었고, 학생들은 감자탕을 먹었다. 군소리 없이 감자탕을 먹던 아이들이 교사들을 본 후 "저희는 왜 감자탕이죠?"하고 물었다.

 처음에는 그냥 웃고 말았는데 나중에는 급기야 용기(?) 있는 학생들이 스스로 주문을 하고 삼겹살을 시켜먹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들이 뒤늦게 용기를 내는 바람에 감자탕으로 인한 포만감에 이미 배가 불러있다는 것이다. 때를 봐 한 마디 했다.

 "그래! 청소년 시기에는 비만 걱정하지 말고 많이 먹어야 해! 어서들 먹어라."

 식사가 끝나갈 쯤, 아이들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며 건의 사항을 들었는데 많은 아이들이 여름에 바다로 MT를 보내달라고 했다. 순간 비용과 장소, 시간 등을 생각하니 약간의 갈등이 생겼지만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좋아! 이번 여름에 멋진 바다를 구경하러 가자"하고 말했다.

 아이들은 "와~"하는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그런데 한 녀석의 표정이 좀 어두워졌다.

 그 친구는 지난해 CYA 회장이었다. 그 친구는 지난해 자신이 회장일 때 신부님도, 선생님도 아무도 챙겨주지 않았다며 서운하다고 털어놨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지난해뿐 아니라 그 전에도 CYA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못했다. 당시 격무와 재정적 빈곤에 시달리던 나는 CYA 학생들을 담당 교사에게 맡기고는 잊고 지냈다. 어쩌면 기억하기 피곤했을지도 모른다.

 오늘 엄청난 열기와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청소년들을 보며 새삼 까맣게 잊고 지냈던 고교시절이 떠올랐다. 또 지난해 CYA 회장의 볼멘 한 마디는 좀전의 감동과 뒤범벅 되면서 머릿속에 가수 이문세의 '굿바이'라는 노래를 울려 퍼지게 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괜시리 서글픔과 미안함이 밀려왔다.
 
 과도한 예수님 흉내(?)를 내고 숙소로 돌아온 그날 밤, 심신이 피곤했다. 그리고는 주님께 여쭤봤다.

 "주님, 당신이라면 학생들에게 삼겹살을 사주실 겁니까? 감자탕을 사주실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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