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상 신부(춘천교구 인제본당 주임)
성탄 예술제 막간을 이용해 사회자가 "본당 신부님 흉내를 제일 잘 내는 분께 상품을 드립니다" 하고 말했다. 그런데 모든 신자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아 "정리가 안 돼, 정리"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이지?'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곧 내 입가에 웃음이 맴 돌았다.
그동안 본당에서 입에 달고 다녔던 말이 "정리가 안 돼. 정리가 안 된단 말야"였다. 우리 교구의 많은 본당들은 규모가 작다. 작은 본당들은 대부분 신자가 많지 않아 사무장이 없다. 그러기에 신부들이 사무장 역할은 물론 본당에서 일어나는 자질구레한 사무일과 온갖 잡일들을 도맡아 처리한다. 그러다보니 후임 신부가 부임하게 되면,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처음 몇 달은 본당의 모든 일들, 사무 서류, 본당의 내ㆍ외적 일들을 자신의 취향(?)에 맞추어 정리하는 일로 시작한다.
지금 내가 있는 본당에서도 다른 본당에서와 마찬가지로 정리를 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있어 온 모든 일들이 어찌 하루아침에 정리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신자들을 만날 때마다 정리가 안 된다고 정리를 시키는 것이 다반사가 돼 버렸다.
성전 안 성물을 정리하고, 또 전례 틀을 다시 정리하고, 본당 서류들을 찾기 쉽게 정리하고, 본당 서류철들을 다시 틀을 꾸며 쉽게 만들 수 있도록 정리했다. 본당 외적으로 주변과 조경 정리, 흩어져 있는 나무들을 보기 좋게 정리, 정리에 또 정리를 했다.
이런 말을 하고 다니는 나 자신은 어떤가.
내 책상 위는 정리하지 않은 그대로다. 식복사 자매님이 보다 못해 깨끗하게 정리해 놓으면, 내가 놓았던 자리에 없어 들쑤셔 찾기가 일쑤다. 그래서 제발 그냥 내가 놓은 자리에 놔두라고 부탁을 하곤 한다.
어느 신자 분께서 사제관 서재를 보고 나서 "신부님 저희가 책장 정리를 해드릴까요?" 하고 말하면, "형제님 제가 정리되면, 그때 저는 다른 본당으로 가는 거지요" 하고 말하며 오늘도 지낸다.
며칠 전 다른 본당에 모금하러 본당을 비웠을 때였다. 원로사목자께서 주일 미사를 대신 맡아 주셨다. 모금을 마치고 본당으로 왔을 때 몇몇 신자들 눈초리가 이상했다. 그래서 "은퇴 신부님께서 뭐라 하셨는데 그러십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신자들이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전했다.
" '정리는 본당 신부만 하면 다 되겠네'라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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