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상 신부(춘천교구 인제본당 주임)
교구 사제 연수를 갔을 때, 신부님들은 내 머리 스타일에 많은 관심을 갖고 말씀을 하셨다. "김 신부. 지금 멋있어. 제발 다른 짓(?)은 더 하지 말게." 지금 내 머리 모습은 장발에 퍼머를 약간 한 상태이기에 모든 신부님들 관심거리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염려는 다른 이유에서이다.
무엇인가 풀리지 않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면 삭발하는 버릇이 생겨 가끔 삭발을 한 채, 교구 사제 모임에 나타나는 내 모습을 기억하며 또 한번의 불미스러운 모습을 보아주기 힘드셨던 교구 신부님들의 충언이었다.
나는 괴팍한(?) 성격 탓에 가끔 봄이 오면 머리를 삭발한다. 머리를 삭발하면 지나가는 바람의 존재도 느낄 수 있고, 왠지 나를 다 내어놓은 듯한 홀가분함도 느낄 수 있다.
전 본당에서는 이 삭발로 인한 오해도 있었다. 그것을 소개하면 이렇다.
"엄마 성당에 웬 스님이 오셨어."
본당에 부임 후 얼마 안 됐을 때 일이다. 멀리 유학을 하던 자녀가 본당신부 부임 소식을 접하고 한껏 기대하며 미사참례를 하고 어머니께 한 말이다.
멋진 신부를 기대하고 성당에 올라간 순간, 머리는 스님이요, 옷은 수단을 입고, 강론할 때는 청산유수 목사님 같아서 혼란이 있었다고.
긴 머리칼을 날리며 다니던 어느 날 삭발을 하면 신자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 큰 소리로 나의 존재를 전해 줘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지만, 머릿속 어지러움을 일시에 정리할 수 있는 이점도 있고, 본당 분위기를 쇄신함에도 일조를 하기에 가끔 삭발을 통해 새로움으로 나아가곤 한다.
어느 날 서울에 계시는 수녀님들께서 부활휴가를 위해 산골에 있는 나를 찾아주신 적이 있었다. 함께 주변 여러 곳을 안내해 드리고 점심 식사를 하러 바닷가로 갔다. 그때 본당에 작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 어려움에 힘이 들어 있던 처지라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겠다고 고민하던 중이었다.
수녀님들을 바닷가에 모셔놓고 나는 바쁘게 향했다. 그곳은 바로 '미용실'이었다.
삭발을 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수녀님들이 바닷가에서 거니는 동안 삭발을 하고 나타났다. 처음에 수녀님들은 "웬 스님이야?" 하고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나를 알아본 수녀님들은 깜짝 놀라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시고 몹시 당황해 했던 기억이 난다.
하여튼 모든 이들이 사제가 아니라 어느 절에서 하산한 스님으로 착각할 지라도, 오늘 또 삭발의 유혹을 느끼며 거울 속에 내 모습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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