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일기

황사에 대한 고백

namsarang 2010. 4. 30. 16:13

[사목일기]

 

황사에 대한 고백


                                                                                                                                                            김길상 신부(춘천교구 인제본당 주임)


   "어제 밤 황사가 아주 심했는데, 신부님은 괜찮으셔요?"

 아침에 만난 신자의 염려어린 문안인사를 받으며 나는, '일기예보에도 없는 황사가 있었다니…?'라고 생각하며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지난 태풍 '루사' 때 일입니다.

 태풍 루사가 휩쓸고 지나간 다음 날 소임 이동으로, 가장 심한 피해를 받은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태풍 피해로 어려움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새로 부임하는 신부를 잘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렇다고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뵙고 "잘 왔습니다"하고 부임 보고를 드리려고 들어선 성당은 온통 물 바다였습니다. 아직도 천정에서는 못된 태풍 루사 상처의 흔적이 흘려 내리고 있었습니다.

 본당 부임을 하고 가장 시급한 것이 성당 지붕을 수리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모았습니다. 힘든 일이지만 대대적인 공사를 벌이기로 결정했습니다.

 60년 전 옛 기와지붕도 태풍의 피해가 심했던 것입니다. 나는 혼자 지붕에 올라가서 기와를 내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지붕 위로 올라가 보니, 문제는 기와가 아니었습니다. 기와를 잡아주는 진흙 덩어리가 문제였던 것입니다.

 '이를 어쩐담?'

 성당 주변에 많은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진흙덩어리를 치울 경우 흙먼지가 몹시 날려 좋지 않은 소리 들을 것이 뻔했습니다. 도대체 이 진흙덩어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고민거리였습니다. 그러나 궁하면 통한다고 고민 끝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살수차를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살수차로 진흙을 씻어 내기로 결심하고 하루 일을 마쳤습니다.

 다음 날 아침, 작업복 차림으로 일을 시작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조배왔던 자매님에게서 "신부님, 지난 밤 황사가 아주 심했는데 피해 없으세요?"라는 인사를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순간 머리를 꽝하고 때리는 게 있었습니다. 바로 성당 지붕입니다.

 머리를 들어 성당 지붕을 보니 아! 이 어인 일입니까? 밤새 하느님께서 바람을 불러 지붕의 진흙덩어리를 깨끗하게 날려 보내 주신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깨끗하게 말입니다.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고백할 수 있습니다.

 "자매님 그때 황사는 황사가 아니라, 성당 지붕 진흙이었습니다. 황사를 일으킨 것은 중국의 사막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의 집이었답니다. 용서하소서."

'사목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을 잘 치게  (0) 2010.05.17
스님이 본당 신부로 오셨남?  (0) 2010.05.08
"시험 잘 봤니?", "아니요!"  (0) 2010.03.26
우리 학교 호랑이 선생님!  (0) 2010.03.19
초콜릿 하나로 아이들을 유혹하다  (0) 2010.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