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일기

하늘나라의 또 다른 이름은?

namsarang 2010. 6. 23. 23:48

[사목일기]

 

하늘나라의 또 다른 이름은?


                                                                                                                                         홍석정 신부(의정부교구 청소년사목 7,8지구 전담)


   오래전 일이다. 어느 날 저녁에 병자성사를 청하는 전화가 왔다. 아이가 사고를 당해 위독하다는 내용이었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아이 부모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이 아버지는 십자고상을, 어머니는 묵주를 들고 울부짖고 있었다. 그러던 부모는 나와 본당 수녀를 보고는 예수님과 성모님을 만난 듯이 수십 차례 절을 하면서 아이에게 말했다.

 "안젤라야, 일어나라! 예수님하고 성모님이 오셨어!"

 그때 나는 아이 아버지가 정말로 예수님과 성모님을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절박한 그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울며 기도하는 아이 부모와 혼수상태에 빠진 아이를 보며 나도 눈물을 흘렸다. 아이는 결국 하늘나라로 갔지만, 내 마음에는 아직도 낙인처럼 생생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은 분명 아니었지만, 왠지 마음이 무거웠다. 당시에 아이 부모와 함께 울었지만 하느님과 온전히 함께 하지 못했고, 그 당시의 절박한 상황에 지배됐던 것 같았다.

 그 후, 나는 아픈 아이를 볼 때마다 최선을 다해 기도했다. 부모의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느님께 은총을 청하고, 내 수명을 줄여서라도 아이를 지켜달라고 기도했다.

 얼마 전 선천성질환을 가진 아이가 큰 수술을 하게 돼 기도해주러 병원을 찾았다. 여러 차례 수술 실패를 겪고 마지막 수술을 시도하게 됐는데 잘못되면 평생을 불편하게 살아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아이는 찾아간 나를 보고 좋아했다. 내가 준 조그만 곰 인형도 꽤 마음에 들어 했다. 난 아이와 약속했다.
 "이번에 수술 잘 받으면 신부님이랑 놀러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자. 그러니까 수술 잘 받아야 돼!"

 아이는 무척 좋아했고, 수술도 잘 받았다. 수술 후 통증으로 축 늘어져서 많이 아파했지만 나를 보고는 곧잘 웃어줬다. 아이의 미소에 이상하게도 마음이 먹먹해지며 코끝이 찡해졌다. 이후로 아이는 건강해졌다. 모두가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아이도, 아이 부모도, 의사도. 그리고 난 진심으로 그 아이가 건강해지길 기도했다.

 아이들은 내게 아주 많은 걸 가르쳐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특별히 어린이들을 사랑하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내게 행복의 참된 의미를 가르쳐준 또 다른 아이의 말이 떠오른다. 그 아이는 특이질환으로 몇 달 동안 양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던 탓에 다리를 접을 수가 없었다. 많이 불편했을 텐데도 항상 밝게 웃었다. 게다가 아프고 불편하니 철학자가 됐는지 나한테 자꾸 인생에 대해 가르쳐(?)줬다.

 "어쭈! 제법인데!"싶게 그게 또 다 그럴 듯했다. 그러다가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신부님, 행복은 다리를 접는 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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