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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있으나 범인 없는' 안보리 성명을 보고

namsarang 2010. 7. 12. 18:07

[시론]

'범죄 있으나 범인 없는' 안보리 성명을 보고

  • 이신화 고려대 교수

           ▲ 이신화 고려대 교수
유엔 안보리가 천안함 침몰을 초래한 공격을 규탄하는 의장성명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그동안 유엔의 결정사항들이 많은 경우 강대국들의 정치적 타협에 의해 이루어져 왔던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안보리의 대응조치가 구속력 있는 결의안 대신 상징적 조치에 준하는 의장성명으로 마무리된 것은 예상된 일이었다.

안보리가 중국러시아의 유보적 태도와 남북 간의 외교 공방전 속에서도 우리 측이 주도한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수용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성명서에 북한이 공격주체라는 내용을 명기하지 않은 점은 '국익 각축장'인 유엔 정치의 현실을 새삼 일깨워주는 안타까운 결정이다. 더욱이 이로 인해 우리측이 북한의 책임을 묻고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는 일도 힘들어진 것 같다.

북한은 6·25남침뿐 아니라 정전(停戰) 이후에도 청와대 습격, 남침용 땅굴, 아웅산 테러, 대한항공기 폭파, 강릉 잠수함 침투 등 크고 작은 대남 무력도발을 감행해 왔고, 많은 경우 이를 부인했다. 우리 영해에서 우리의 군함이 북한에 의해 폭침당한 이번 사건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명백한 침략행위였다. 이러한 일련의 '나쁜 행동'을 제어하고 추가도발을 막기 위해 국제사회의 강력한 규탄과 제재조치는 불가피한 것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란 대국적인 견지"에서 "불씨에 기름을 붓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북한에 대한 비난보다는 우리측의 자제를 요구해왔다. 이번 의장성명도 이러한 중국의 입장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남한의 자작극이라거나 안보리 제재 시 군사적 초강경 대응을 하겠다는 등 발뺌과 협박으로 일관하던 북한도 의장성명 이후 6자회담 재개를 언급하며 대화 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당분간은 북한이 중국 정부나 국제 여론을 의식해 추가적 도발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법은 북한의 태도와 행동이 근본적으로 바뀔 때에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는 한 대화와 도발을 병행하는 북한의 전략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주장은 결국 한국은 북한의 불장난에 계속 침묵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중국의 '북한 감싸기'는 궁극적으로 북한의 나쁜 행동을 부추기고 한반도 위기를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안보리 성명을 보면서 우리는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국제관계가 한편으로는 매우 급박하게 변화해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거의 바뀌지 않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한·미동맹이나 한·미·일 공조에만 집착하는 것은 과거 냉전(冷戰) 대결구도에 근거한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이며, 한·중·일 3국이 동북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해 협력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는 것은 당위적인 주장일 뿐 아니라 우리가 향후 추구해가야 할 주요 정책과제이다. 우리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쌍방관계를 더욱 긴밀히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또한 우리가 북한 문제를 포함한 외교안보 정책을 전개해나가는 데 있어 미·중 경쟁구도 속의 우리 입지를 확보하려는 복합적인 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와 공동의 가치를 공유한 국가들과의 협력관계를 최우선시하는 것은 냉엄한 국제 현실정치 속에서 우리의 생존전략을 모색하고 외교입지를 굳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이번 천안함 사건에서 중국이 북한을 엄호한 것에서 그 교훈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