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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음 맞추다 보면 세대차 몰라요"

namsarang 2010. 7. 31. 23:30

[사람과 이야기]

"화음 맞추다 보면 세대차 몰라요"

  • 석남준 기자 namjun@chosun.com
  • 윤동빈 인턴기자 (고려대 독어독문학과 4년)

의정부 '1세대와 3세대가 함께하는 락앤롤 밴드'
나이차 50세가 넘지만 음악 통해 서로를 이해…
"어린 친구들과 밴드 활동, 평생 한이 풀리는것 같아"
"할머니·할아버지들과 연주할 수 있어 기뻐요"

경기도 의정부시 민락동의 송산노인복지회관 3층에는 매주 월요일 오후 5시가 되면 한 세대를 건너뛴 8인조 혼성그룹이 모여 공연연습을 한다. 얼굴에 주름이 깊이 팬 70대 전후의 할아버지·할머니 5명과 앳된 얼굴의 중학교 3학년생 3명으로 이뤄진 '락앤롤 밴드'다.

이 그룹은 경기도 의정부시 교육청과 송산노인복지회관이 지난해 5월 1세대와 3세대 간의 세대 차를 극복하기 위한 일환으로 '1·3세대가 함께하는 락앤롤 밴드'를 모집해 결성됐다. 학생들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음악을 하기 힘든 가정의 자녀들로 구성됐다.

지난 19일 오후 경기도 의정부시 송산노인복지회관에서 중학생인 한기복, 정재완군과 이원희씨, 황금자씨, 이옥순씨, 오양선씨(왼쪽부터)가 밴드 연주를 하고 있다.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지난 19일 오후에 모인 이들은 "딱딱딱딱" 드럼 스틱 소리에 맞춰 어린 학생과 어르신들이 유행가인 '남행열차' '무조건' 등을 능숙하게 연주했다. 학생들은 기타와 베이스를 메고 키보드와 드럼 앞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학생들은 물론 할머니·할아버지들도 이전까지 한 번도 악기를 잡아본 적이 없는 생초보들이다. 모자를 거꾸로 쓴 채 베이스를 멘 이덕희(70)씨는 "세 딸이 모두 바이올린을 잘 켜는데 아버지인 나는 정작 악기 하나 다뤄본 적이 없었다"며 "늦은 나이지만 멋지게 베이스를 연주할 수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 이씨는 "오케스트라 단원인 딸들이 젊디젊은 친구들과 밴드를 하는 아버지를 부러워한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베이스를 연주하는 정재완(15)군은 "할아버지·할머니와 갈고 닦은 솜씨를 바탕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1·3세대가 함께하는 락앤롤 밴드'는 세대 차이만큼이나 함께 연습하기 힘들다. 학생들이 어르신들보다 순발력이나 학습력은 뛰어나지만 중간·기말 시험 준비 등으로 연습에 빠지는 날이 많기 때문이다. 기타를 연주하는 한기복(15)군은 "할머니·할아버지들보다 실력이 크게 떨어져 창피했다"며 "뒤처지지 않으려고 집중해서 연습했다"고 했다. 어르신들은 학생들에 비해 부족한 순발력을 '꾸준한 연습'으로 채웠다. 드럼을 연주하는 황금자(65)씨는 허리 수술을 받고 2주 만에 연습에 참여했다. 황씨는 "밴드부원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아들과 며느리 몰래 연습에 나왔다"며 "집에서 베개를 가져다 놓고 드럼이라 생각하고 연습한다"고 말했다.

학생들과 할머니·할아버지들 간에는 50세 이상 나이 차이가 있지만, 큰 나이 차가 오히려 락앤롤 밴드를 하나 되게 했다. 노래 실력이 남다른 이옥순(70)씨는 "젊었을 때 음악을 제대로 배워보지 못한 게 한이었다"며 "하지만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열심히 음악을 배우는 어린 친구들을 보면 내 한을 대신 풀어주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한기복군은 "중학교 진학 후 공부하느라 바빠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 얼굴을 자주 못 본다"며 "매주 만나는 밴드 할아버지·할머니가 진짜 우리 할머니·할아버지 같다"고 했다. 한군은 "내년 어버이날에 밴드 할아버지·할머니들께 카네이션을 꼭 달아드리고 싶다"고 했다. 사회복지사 안덕례(33)씨는 "처음에는 어르신들과 어린 학생들이 잘 어울릴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음악을 통해 세대 차를 극복하는 모습에 놀랐다"고 말했다.

'1·3세대가 함께하는 락앤롤 밴드'는 작년 10월 송산노인복지회관 별관 개관식 행사에 나와 400여명의 주민 앞에서 세대를 초월한 명곡인 비틀스의 '렛잇비(Let it be)'를 연주했다. 어르신과 어린 학생들이 밴드를 구성해 연주하는 생경한 모습에 관중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고 한다.

밴드를 이끌고 있는 키보드 연주자 오양선(61)씨는 "오는 11월 락앤롤 밴드의 첫 작품발표회를 앞두고 있어 많이 긴장된다"며 "어린 멤버들이 방학을 맞아 맹연습하고 있어 올해엔 더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