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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세계여자청소년핸드볼선수권 MVP에 뽑힌 이은비가 3·4위전에서 부상을 당해 코트에 누워 있다. 국제핸드볼연맹(IHF)은 이은비의 뛰어난 기량을 높이 평가해 한국이 4위에 그쳤음에도 이은비를 MVP로 뽑았다. /송민진 인턴기자(School of Visual Arts NY 사진과 1년) |
[Sports 인사이드] 청소년 여자핸드볼 세계선수권서 4위 하고 MVP 된 이은비
핸드볼 했던 아버지는 암투병하며 선전 빌어… "우승약속 못지켜 죄송""은비가 MVP로 뽑혔다고요? 그런 얘기는 안 하던데. 그냥 무릎을 약간 다쳐서 깁스했다고 했는데 괜찮은지 모르겠네요."
이정돈(46)씨는 전화 통화도 힘이 드는지 간간이 숨을 몰아 쉬었다. 그는 암환자다. 지난 1월 위 절제 수술을 받았고,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들어가 항암치료를 받는다.
힘든 투병생활이지만 딸에겐 내색하지 않는다. "은비 할아버지(75)도 3년 전 후두암 수술을 받았죠. 애 엄마도 13년 전에 이혼해 없고. 그래서 삼척 집에 자주 오지 말라고 했죠. 아픈 사람 보면 뭐 좋은 게 있겠습니까?"
그의 외동딸 이은비(20·부산시설관리공단)는 지난달 31일 끝난 제17회 세계여자청소년핸드볼선수권대회 최우수 선수로 뽑혔다. 서울에서 벌어진 이 대회에서 한국은 4위에 그쳤다. 8연승으로 쾌속 진군하다가 4강전에서 러시아에, 3·4위전에서 몬테네그로에 각각 졌다. 그래도 국제핸드볼연맹(IHF) 레온 카림 경기위원장은 "개인 기량이 가장 뛰어나다"며 이은비를 대회 MVP에 선정했다. 한국 선수가 세계 청소년선수권대회 MVP를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은비는 이번 대회에서 득점 8위(58골)에 올랐다.
이정돈씨도 삼척중·고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핸드볼인이다. 올림픽 금메달을 꿈꿨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운동을 포기하고 중장비 운전기사가 됐다. 힘들게 운동했던 경험 때문에 딸이 핸드볼 하는 것을 반대했지만 "워낙 좋아하고 잘했기 때문에 말릴 수 없었다"는 게 이씨의 말이다. 할머니(73)는 손녀가 운동을 시작한 뒤 한 번도 지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자랑했다.
성인 대표팀에도 소속돼 있는 이은비는 1m65, 52㎏의 작은 체구지만 뛰어난 스피드와 개인기로 유럽의 장신 선수들을 헤집고 다니며 세계 핸드볼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우승팀 노르웨이의 스벤덴 톰 모르텐 감독은 페인트로 수비 1, 2명은 쉽게 제치는 이은비를 가리켜 "마치 스포츠카 페라리 같다"고 그의 기량을 높게 평가했다. 대한핸드볼협회 정형균 실무 부회장은 "성인 대표팀에선 왼쪽 윙을 맡기도 하는데 워낙 스피드가 좋아 한국 핸드볼의 특기인 미들 속공을 잘 소화한다"고 칭찬했다.
이은비는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시상식에 왼쪽 다리에 깁스를 한 채 목발을 짚고 참석했다. 이번 대회 기간 중 척추측만증이 악화돼 통증이 심했다는 그는 몬테네그로와의 3·4위전 후반에는 경기 중 무릎 부상을 당해 두 차례 들것에 실려 나갔고, 후반 16분 이후 경기를 뛰지 못했다. "팀이 지고 있는데 누워만 있어서 너무 미안했어요. 아빠에게도 죄송했고. 우승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이은비와 함께 대표팀 쌍포로 활약한 류은희(20·벽산건설)는 "은비가 마지막까지 뛰었다면 3·4위전에서 1점 차로 아쉽게 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이은비는 실망하지 않았다. "2년 뒤 런던올림픽에서 꼭 우승해 아빠의 소원을 들어 드리고 싶습니다." 아버지 이정돈씨 역시 "이왕 운동한 거 올림픽 메달은 꼭 따야 한다"며 딸을 격려했다. 부산시설관리공단 김갑수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 은비를 데려가고 싶어하는 외국 팀들이 많이 생겼다. 런던올림픽 후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해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