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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용기

namsarang 2010. 8. 4. 22:58

[만물상]

과학자의 용기

"나는 지금 처음의 내 생각과 정반대의 끝 지점에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건 마치 살인을 고백하는 심정하고 똑같다." 다윈이 '종(種)의 기원'의 초고를 쓴 뒤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신(神)의 천지창조에 한 치 의심도 없었던 시대였다. 다윈은 이런 시기에 "모든 생명체는 신의 섭리가 아니라 자연의 선택 과정에 따라 진화한다"는 엄청난 주장을 내놓아야 했다. 그 부담감을 '살인 자백'에 비유한 것이다.

▶살충제 DDT는 식량 증산과 풍토병 퇴치에 크게 기여해 1950년대까지 '기적의 물질'로 불렸다. 누구도 그것의 가치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미국 여성 생물학자 레이철 카슨이 1962년 '침묵의 봄' 책으로 그 신화를 깼다. DDT가 새와 물고기를 죽이고 사람의 목숨까지 위협한다는 폭로였다. 화학약품회사, 농산물업자는 물론 농무부까지 "무지(無知)한 선동"이라고 몰아붙였지만 카슨은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이겼다.

▶브레히트는 1943년 초연한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에서 갈릴레이가 교회의 압박을 버텨내지 못하고 '지동설(地動說)'을 부인한 사실을 다뤘다. 사회의 압력에 굴복해 진실을 접고 마는 과학자들을 꼬집은 것이다. 숨지기 직전 갈릴레이의 대사다. "(우리는) 기껏해야 무슨 일에든 고용될 수 있는, 발명에 재간을 지닌 난쟁이 족속 정도야. 나처럼 천직을 배반하는 행위를 하는 인간은 학문의 대열에서는 용납될 수 없어."

▶국제 민·군 합동조사단은 '천안함 폭침은 북한 어뢰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내면서 핵심 물증 가운데 하나로 어뢰 잔해에 푸른색 잉크로 씌어진 '1번' 한글 표기를 들었다. 일부 학자와 시민단체는 "어뢰가 폭발하면 온도가 섭씨 수백도까지 올라가 잉크는 탈 수밖에 없다"고 딴지를 걸어왔다. 열(熱)전달 분야 전문가인 송태호 KAIST 교수가 엊그제 '천안함 어뢰 1번 글씨 부위 온도 계산' 논문으로 이런 주장이 엉터리임을 입증했다.

▶송 교수는 "열역학 이론들과 수치해석법을 통해 1번 글씨가 쓰인 부분은 폭발 후 온도가 단 0.1도도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했다. 동료 과학자 26명이 논문을 추인했다. 그는 "전문가 중 누군가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정치와 이념이 과학을 왜곡하는 세상에서 송 교수는 '과학은 과학일 뿐'이라고 말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