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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 헤집고 처연히 사라져 간 나의 동료들

namsarang 2010. 8. 6. 23:13

[ESSAY]

불길 헤집고 처연히 사라져 간 나의 동료들

  • 전세중 서울소방재난본부 시민안전체험관장

 

      ▲전세중 서울소방재난본부
                 시민안전체험관장

어떤 말로 가족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부인의 상냥스러운 대답 앞에 순직했단 사실을 차마 알릴 수 없었다
출근한 남편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올 줄 상상이나 했으랴
남들이 대피한 죽음의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게 소방관의 사명이다

'먼 길 떠난 당신은 늘 푸른 나무/ 순수의 열정으로 빛나던 투혼/ 절망 속에 온몸 던진 희생과 사랑/ 아낌없이 다 내준 거룩한 사명/ 가슴마다 강물되어 길이 흐르리/ 먼 길 떠난 당신은 늘 푸른 나무.'

서울소방학교 추모탑에 새겨진 순직 소방관을 위한 추모시다. '소방혼(消防魂)'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추모탑은 황금빛 불길이 하늘로 타오르는 모양새를 하고 있어 화재 현장을 떠오르게 한다. 화마(火魔)와 싸우다 현장에서 숨져간 소방공무원 79명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탑에 서면 언제나 회환에 젖는다.

2004년 을지연습으로 우리 소방대원들은 서울 강남의 한 고층건물에서 인명구조 훈련을 하던 중이었다. 강남소방서 구조진압과장이던 나는 본부석에서 훈련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건물 옥상에서 로프를 타고 내려가 사람을 구하는 훈련이었다. 그런데 뭔가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것을 순간적으로 느꼈다.

진압팀장이 울먹이며 내게 다가왔다. 대원 중 한 사람이 하강하다 추락해 급히 병원으로 이송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대원은 벌써 현장에서 순직한 상태였다. 눈앞이 캄캄했다. 안전요원을 배치하고, 전날 예행연습까지 잘 끝낸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믿기지 않았다.

순직한 대원은 언제나 수첩에 두 아이 사진을 끼워 놓고 자랑스러워하던 특전사 출신이었다. 가족들에게 사고소식을 알려야 하지만 정녕 어떤 말로 가족들을 위로해야 한단 말인가.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남소방서 과장입니다." "아, 네 과장님, 안녕하세요." 부인의 상냥스러운 대답이 흘러나왔다. 훈련을 하다가 순직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소방서장과 대원의 이름으로 부인에게 엄숙히 경의를 표해야 하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남편이 훈련 중에 부상을 입어 병원 응급실에 와 있습니다." 나는 그저 병원으로 급히 와달라고 하였다.

병원에 도착한 부인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잘 근무하고 오겠다며 나갔던 남편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올 줄이야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소방관은 재난이나 사고가 났을 때, 현장에 제일 먼저 달려간다. 뜨거운 불 속에 뛰어들 용기가 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며 누군가를 구해내야 하는 게 소방관의 사명이다. 하지만 평상시 소방차 사이렌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하는 게 그 가족들이 아닌가.

얼마 전 한 대원이 화재 현장에서 숨졌을 때도 기억이 난다. 그날 현장에 도착해 보니 시꺼먼 연기가 건물을 휘감아 덮고 있었다. 우리는 신속히 불길을 헤집고 들어가 불길을 잡았다. 그러나 혹시 건물 안에 사람이 있을지 몰라 대원들을 다시 들여보내 자세히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대원이 어둠과 매캐한 연기 속에서 엘리베이터 통로를 보지 못하고 그만 발을 헛디뎠다. "앗"이란 짧은 비명과 함께였다.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 위해 만든 4층 통로였다. 나도 모르게 대원들을 사지로 보냈다는 죄책감과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남들이 불을 피해 대피 하는 순간, 거꾸로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게 소방관들이다. 미국 9·11테러 때도 소방관들은 묵묵히 건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들어갔다. 그래서 소방관을 세상에서 가장 바보라고 말하지 않는가.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며칠 후 인명구조훈련을 하다 숨진 대원의 장례식이 강남소방서장으로 치러졌다. 365일 비상사태로 명절 한 번 제대로 쉬어보지 못하고, 친구들의 경조사마저 제대로 찾아볼 시간이 없어 사회와 멀어지는 게 소방관들의 삶이다. 그러기에 소방관들은 외롭다.

난 불현듯 시 한 편이 떠올랐다. 미국의 한 소방관이 썼다는 '어느 소방관의 기도'였다.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는/ 아무리 강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저는 언제나 안전을 기할 수 있게 하시어 가냘픈 외침까지 들을 수 있게 하시고/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봐주소서.'

순직한 대원은 노모와 다섯 살, 세 살배기 두 아이가 있었다. 30대 부인이 아이들을 보살피며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부인의 어깨에 너무나 큰 짐이 얹혀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부인은 의연했다. 나는 부인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며, 순직자 조의금은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엇보다 남의 보증을 서지 말고, 돈을 빌려주지도 말고 아끼고 살라는 조언을 해 주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수소문해 그녀의 직장도 마련해 주었다.

내가 다시 그녀를 만난 것은 순직 소방공무원 추모비 '소방혼' 건립 행사장에서였다. 행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그녀가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추모탑에는 그녀의 남편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간만에 본 그녀는 무척이나 수척해 보였다. 나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요즘 직장은 잘 다니세요?"

"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나요?"

"네, 잘 크고 있어요."

아직도 새댁인 그녀의 젊음이 내 가슴을 찡하게 하였다. 돌아서는 그녀의 뒷모습이 너무 쓸쓸하게 느껴졌다. 사고 당시 전화를 했을 때, 그녀의 반가운 웃음과 상냥한 목소리와는 너무도 반대되는 모습이었다. 누가 그녀의 웃음을 앗아갔나 소방관들은 그게 숙명이라고 오늘도 묵묵히 불앞에 뛰어든다. 자기 목숨을 담보하고서.

오늘도 나는 추모비를 바라보며 그들의 거룩한 희생정신에 머리를 숙인다. 비석에 쓰인 이름들이 햇살을 받아 푸른 빛을 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