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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조금씩 잘못한 전쟁이었다고?

namsarang 2010. 8. 10. 23:40

[태평로]

모두가 조금씩 잘못한 전쟁이었다고?

김광일 부국장 겸 국제부장
해리 트루먼(Truman) 대통령은 망설였다. 원폭을 투하하는 대신 일본 본토에 상륙작전을 개시하는 것이 정답 아닐까. 그러나 백악관 전쟁 참모들이 말렸다. 일본 본토를 육상으로 쳐들어갈 경우 미국 쪽 사상자 100만명, 일본 쪽 사상자 최소 200만명이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리틀 보이'가 투하됐고, 사흘 뒤 나가사키 원폭 투하 그리고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이어졌다. 물론 원폭 후유증은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지만 당시 숨진 사람은 12만명이었다.

지난주 금요일(6일).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는 원폭 희생자 위령제가 열렸다. 사상 처음으로 주일 미국대사 존 루스(Roos)가 이 행사에 참석했다. 해마다 미국 대사에게 초청장이 갔지만 매번 거절당했다. 루스 대사는 무거운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필립 크롤리(Crowley) 미 국무부 대변인은 "제2차 대전의 희생자에 대한 경의(respect)를 표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폭 폭격기 조종사 폴 티베츠는 죽을 때까지 "후회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의 아들 제임스 티베츠도 루스 대사의 위령제 참석이 "무언의 사죄(an unsaid apology)"로 보이면 안 된다고 말했다. 참전 군인 18만명을 대표하는 단체 AMVETS도 성명을 냈다. "루스 대사가 참석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지만 사죄로 오인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루스 대사에게 위령제 참석을 지시한 버락 오바마(Obama) 대통령이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이 있다. 1985년 5월 5일 로널드 레이건(Reagan) 대통령이 독일 비트버그에 있는 콜메쇼헤 독일군 공동묘지에 헌화했던 일이다. 레이건은 "강제 수용소 희생자들 못지않은 나치의 희생자들"에 대해 경의를 표했다. 아마도 레이건은 당시 헬무트 콜(Kohl)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거나 아니면 40년이란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비트버그 묘역에는 SS친위대원들까지 묻혀 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 미국 여론이 발칵 뒤집혔다. 레이건의 헌화는 미국의 참전용사들은 물론이고 홀로코스트의 유대인 희생자들의 명예까지 한꺼번에 유린하는 실수였던 것이다. 레이건이 나중에 이 사태를 벗어나기까지는 케데스 비알킨, 헨리 키신저 같은 이들의 변호가 컸다. 워싱턴 기념박물관관장 마이클 베렌바움(Berenbaum)은 레이건의 실수를 "순진한 미국의 낙관주의"라고 말했다.

루스 대사의 위령제 참석에 대해 일본 언론들은 머지않아 미국 대통령이 참석하는 날도 올 것이라는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 원폭 투하를 지휘한 커티스 러메이 장군에 대해 책을 내기도 했던 워런 코작(Kozak)은 어제 월스트리트저널에 쓴 글에서 '도덕적 등가성(等價性)'(moral equivalence)이란 생각을 경계했다. 요즘 일부 미디어와 대학들은 젊은 세대를 잘못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 참혹하긴 했지. 그렇지만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잘했다거나 일방적으로 잘못했다고 할 순 없어. 다들 조금씩 비난받을 만한 측면이 있는 거야."

한국은 대학뿐만 아니라 초·중·고가 다 문제다. '제2차 대전 희생자'란 포괄적이고도 순진한 표현 속에 일본군 전범들과 1700만 아시아 희생자들이 한데 뭉뚱그려지는 날이 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더구나 '순진한 대한민국의 낙관주의'가 전성기를 맞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