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민충기 前 EBRD
- 수석 이코노미스트
약 20년 전부터 선진국들과 특히 국제개발은행들이 폭넓게 사용해 온 PF는 원래 무보증 대출(non-recourse finance)이라 하여 은행이 현금 흐름 등 사업의 타당성만을 기초로 지원하는 금융기법이다. 따라서 PF에서는 투자자는 사업이 망한다 해도 초기 자본금만 손해를 보면 된다. 그러나 PF은행은 무보증에 따른 높은 위험부담 때문에 타당성 검토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 대출 이자율도 높을 수밖에 없다.
PF은행은 투자자가 제출한 사업타당성 검토보고서 외에도 이를 재검증하기 위해 다양한 내부 평가 작업을 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퇴출전략 등도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 2~3년의 시간과 100만달러 이상의 비용을 들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PF는 주로 석유개발이나 고속철도와 같이 대규모 자금이 들고 부채 상환에 10~15년 이상이 걸리는 투자에 주로 적용된다. 유럽개발은행(EBRD)의 PF 프로젝트들을 보면 10억달러 이상의 석유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장기 대출과 대형 선박 건조에 대한 지급보증 등 다양하다.
EBRD에선 부동산 개발 관련 프로젝트들에 대해선 PF를 적용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높기 때문에 가급적 다루지 않는다. 다룬다 하더라도 투자의 주체인 부동산 회사엔 소유 부지를 포함한 최소한의 자기자본 비율을 전체 비용의 30~40% 정도로 요구하고, 나머지 비용은 자세한 사업타당성 검토를 거친 후 은행의 대출로 충당케 한다. 특히 공사 비용을 최소화시키기 위하여 건설회사 선정은 PF 은행의 감독하에 공개 경쟁을 통해 선정해야 한다.
지금 국내엔 본래 의미의 PF를 적용한 대형 프로젝트는 한 건도 없다. 현재 부실로 문제가 되고 있는 부동산 PF 대출이라는 것은 페이퍼 컴퍼니에 불과한 시행사가 저축은행들로부터 브리지론(bridge loan)이라는 급전(急錢)을 빌려 부지 매입 계약만 해놓고 나머지 잔금과 기타 건축 비용은 시공사의 지급 보증을 받아 시중 은행들의 일반 대출로 해결하게 한 것이다. 이는 비정상적인 기업대출에 불과하며 PF가 무엇인지 알고도 이를 PF라 했다면 일종의 사기다.
시행사는 PF라는 이름으로 허울좋게 포장해 심지어 무일푼으로 대박의 신화를 꿈꿨다. 사업의 실세인 시공사는 은행 대출로 인한 직접적인 부채 부담을 지급 보증으로 해결했으니 공사비도 맘대로 부풀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위험한 부동산 투기에 정부의 감독을 받고 있는 은행들이 합세해 왔으니 정부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황당한 PF대출이 민간 부문에만 있는 게 아니고 공공과 민간부문이 공동으로 참여한 공모형 PF사업들에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말로는 부동산 투기와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를 근절시킨다면서도 PF는 손놓고 보기만 해왔다. 이 부실을 결국 또 공적자금으로 해결한다면 일반 국민들만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