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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동아 강제폐간 70년

namsarang 2010. 8. 10. 23:37

[만물상]

조선·동아 강제폐간 70년

1940년 8월 10일 조선일보사는 아침부터 무거운 침묵에 빠져들었다. 편집국 기자는 기사를 쓰다 끝내 고개를 떨어뜨렸다. 공무국 직원은 여느 때처럼 빠르게 신문을 찍어내는 윤전기가 야속한 듯 붙들고 통곡했다. 편집국 벽에는 일본열도와 사할린, 한반도 전역이 일본 영토로 붉게 표시된 동아시아 지도가 삐딱하게 걸려 있었다. 조선총독부가 민족언론 조선일보·동아일보를 강제 폐간하는 날이었다.

▶"비 바람 겪어서 20춘(春) 20추(秋), 보리는 썩고 죽어 싹을 내나니 이 몸의 죽음도 그러하리라." 지금도 조선일보 1면 왼쪽 아래 매일 실리는 '팔면봉'은 강제로 붓은 꺾이지만 다시 살아나고 말겠다는 의지를 감추지 않았다. 1920년 3월 5일 창간 이래 20년, 셀 수 없는 정간(停刊)과 압수·발매금지·삭제 속에 6923호째 이어온 내 나라 언론이었다. 이날은 일제가 조상 대대로 내려온 성(姓)마저 바꾸도록 강요한 창씨개명 시한(時限)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모든 것을 전시총동원 체제로 운영했다. 언론도 군국주의의 총칼과 군홧발 아래 놓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조선·동아가 지면 곳곳에 심어놓은 저항과 비판 기사는 저들에게 눈엣가시였다. 39년 일제 극비문서는 "조선통치의 기본은 조선인의 황국신민화에 있지만 조선일보·동아일보의 존재에 의해 저해되고 있다"며 강제폐간을 암시했다.

▶"붓이 꺾이어 모든 일 끝나니/ 재갈 물린 사람들 뿔뿔이 흩어진 서울의 가을/ 한강물도 울음 삼켜 흐느끼며/ 작은 연못 외면한 채 바다 향해 흐르네." 만해 한용운은 조선일보 강제폐간의 슬픔을 시에 담았다. 그는 3·1독립선언서 공약 3장을 썼고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드물게 끝까지 변절하지 않았다. 조선일보 폐간과 함께 그가 조선일보에 연재하던 소설 '삼국지'도 281회로 영영 멈췄다.

▶그날 조선일보 기자들이 폐간호를 만들고 편집국에 모여 '마지막 사진'을 찍은 지 오늘로 꼭 70년이다. 제퍼슨은 '신문 없는 정부'보다는 차라리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고 했지만, 그로부터 5년 한반도에는 정부도 없고 신문도 없었다. 지금의 민주 정부와 자유 언론은 앞 세대의 고초가 씨앗이 되어 꽃을 피운 것이라서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