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태익 논설위원
모처럼 문화재 반환 소식을 반기면서도 하찮은 것 같은 용어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여기에 일본 내 한국 문화재를 보는 일본의 시각이 함축돼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간 총리는 담화 후 '넘겨준다'는 표현을 쓴 이유에 대해 "청구권 등 법률적인 문제는 이미 해결됐다는 게 일본 정부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청구권 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끝났기 때문에 이번 것은 한국민의 요구와 관계없이 일본이 양국 관계를 위해 큰 맘 먹고 하는 것이란 뉘앙스가 깔려있다. 그럴까? 간 총리 논리대로라면 1965년에라도 일본은 한국 문화재를 돌려주며 '반환'이란 표현을 썼어야 했다. 그러나 그때도 일본이 쓴 용어는 '넘겨준다(引渡)'였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두 차례 그들이 한국 식민통치 시절 빼앗아간 문화재를 돌려주었다. 그러면서 어느 때도 '반환'이란 말을 쓴 적이 없다.
첫 번째는 1958년 이른바 '구보타 망언'으로 교착상태에 빠진 한일 국교 정상화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쓴 용어는 '증여(贈與)'였다. 반환방침이 논란되자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의회에서 "정부는 그것을 반환한다는 법적 근거는 인정하지 않지만, 한국이 독립을 했고, 따라서 그에 대한 한 가지 선물로서 호의로 얼마간의 것을 증여하는 것"이라고 했다. 65년엔 "'인도한다'는 의미는 빼앗은 것을 의무적으로 반환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쪽의 기분으로는 시종일관 '기증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결국 일본은 자국 내 한국 문화재를 놓고 한 번도 남의 것 빼앗아 온 것이라거나, 그래서 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때그때 정치적 필요에 따라 처음엔 '선물'로 준다고 하고 다음엔 '기증'한다고 했다가 이번에 '넘겨준다'에 이른 것이다.
한국 강탈 100년이 되는 이번에만이라도 '반환'이란 말을 썼다면 간 총리 담화의 의미는 또 달랐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걸 잘 못하는 게 일본이다. 그러니 우리 국민이 일본 정부가 넘겨주겠다는 게 어디까지인지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것도 당연하다. 조선왕실의궤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닐까, '제실도서'와 경연 자료 등 궁내청 보관 도서들은 모두 포함될까, '정부 보관 도서'라고 했으면 도쿄대나 교토대 등에 있는 것들도 와야 하는 것 아닌가….
간 총리는 "역사의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이를 인정하는 겸허함을 갖고, 스스로의 과오를 솔직하게 되돌아 보겠다"고 했다. '용기'나 '겸허함'이나 '솔직함'이나 하나 버릴 것 없는 좋은 말들이다. 그러나 '넘겨준다'는 말에서처럼 언뜻언뜻 드러내는 속내 때문에 사과의 진정성에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