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참고

1인 1표 대(對) 1달러 1표

namsarang 2010. 8. 28. 22:33

[해외기고]

1인 1표 대(對) 1달러 1표

후카가와 유키코日 와세다대 교수
              ▲ 후카가와 유키코
              日 와세다대 교수
세계 금융위기 이후 많은 나라가 거액의 재정 지출을 했다. 주요 기업을 실질적으로 국유화까지 한 경우도 많다. 선진국의 태반은 아직 높은 실업률에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주의는 1인(人) 1표(票)다. 이런 상황 아래 정치인들은 선거를 할 때마다 국민 생활에 직결되는 근시안적인 정책에 빠지기 쉽다. 의료보험제도 개혁과 금융규제 개혁을 추진하는 미국 오바마 정권도 그렇고, 어린이 수당 등 선심성 정책을 펼치는 반면에 법인세 인하는 망설이고 있는 일본 민주당 정권도 그렇다.

호황기에 정치가들의 관심은 (경제 논리가 우선하는) '1달러 1표'다. 그러나 불황이 되면 (대중 인기가 우선하는) '1인 1표'가 정치를 압도한다.

정부가 대중 인기를 우선하는 정책을 펴도 사회주의라는 극단의 선택을 하지 않는 한 정부가 민간을 대신해서 고용을 창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글로벌화가 이뤄진 상황이라 정부가 대중 인기를 우선하는 정책만 펴면 기업은 해외로 나가버리고, 고용기회는 더욱더 사라지기 쉽다. 일본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일본에서 정부는 정부의 '무대책'으로 엔화 강세를 허용하고 있지만 대기업들은 엔화 강세에 대한 대응력을 가지고 있다. 노무라증권의 계산에 따르면 엔화 가치가 달러당 1엔 상승했을 경우 1999년에는 영업이익이 약 2.1% 줄어들었는데, 2010년에는 약 1% 정도만 줄어드는 것으로 판명됐다. 절반 수준으로 피해가 줄어든 것이다. 이 원동력은 해외생산비율의 상승이다. 자동차 등 가공형 산업에서는 해외생산비율이 25%를 넘는다.

금융위기 이후 일본의 상장기업들은 고정비용을 6.5% 삭감했다. 25년 만에 최대 규모로 인건비를 줄이면서 손익분기점 매출액도 전년 대비 최대 하락률(12.8%)을 기록했다. 급격히 엔화로 몰려 들어온 자금 덕분에 장기금리 하락이 계속되면서 이자가 붙는 기업부채가 줄어들었다. 장기회사채 발행 등에 의한 안정자금 확보도 이뤄지고 있다. 기업의 자금 사정은 윤택하고, 해외에서의 기업 인수·합병(M&A)도 활발하다. 일본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은 늦어지고 있지만, 이미 글로벌화된 기업들에 큰 핸디캡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일본의 글로벌 기업들 입장에서 보면 한국을 포함해서 타국이 FTA 환경을 정비해 주면 그것을 이용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글로벌화의 시대에는 기업의 이익과 나라 전체 경제의 부침이 따로 놀 수밖에 없다. 일본의 정치가들은 "고용에 직결된다"며 중소기업 지원에는 비교적 열심이지만, 그 주된 거래처인 대기업에는 냉담하며, 머릿속은 정치판뿐이다. 대국(大局)을 보는 경제정책은 없다. 이대로 '1인 1표'가 '1달러 1표'를 압도하는 정치가 지속되면 일본의 글로벌 기업은 해외에서는 살아남아도, 일본 경제는 규제업종과 농업 등의 저생산 부문과 함께 침몰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을 대조적인 정권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대통령 선거를 지배한 것은 같은 '1인 1표'의 논리였다. 한국은 과거 재벌로 경제력이 집중되면서 외환위기를 겪었다. 그래서 경제 우선의 '1달러 1표'에 심리적 저항이 있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글로벌 기업은 압도적으로 잘나가고 한국 국내의 설비투자와 고용은 그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1인 1표'의 논리대로 정책을 펴도 현실은 따라주지 않는 것이다.

한국에서 원화 강세가 이뤄질 경우 이 괴리는 일본 이상으로 커질 것이다. 대중 인기를 얻기 위해 '1인 1표' 정책을 펴지만 글로벌 기업, 정부 부처, 공기업, 전문직 취직은 바늘구멍이고, 그 구멍으로 들어가기 위한 교육비는 가계를 강하게 압박한다. 이는 출산율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또 청소년 자살이 OECD 국가 중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대중은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현재의 글로벌 대기업을 대신할 활력 있는 벤처기업을 육성하고 글로벌 대기업의 거래처 지원을 새로운 방식으로 확대해야 한다. 기업의 고용 인센티브 개선 등 새로운 형태의 '1달러 1표'를 창출해야 한다. 그래서 '1달러 1표' 대 '1인 1표'의 갈등을 넘어서야 한다. 정권 후반을 맞는 이명박 정부는 이 갈등을 넘어야만 친(親)기업 정권으로 면목을 세우고, 사회의 성숙에 공헌할 수 있을 것이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