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향기]
세상을 변화시키는 겸손의 삶
직장경찰사목전담
김준동 마르띠노 신부
이 세상에는 참으로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 높고 귀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과연 그들은 진정 그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일까요? 하느님은 오늘 진정한 가치의 기준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고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하느님은 우리 각자 각자에게 다양한 소임을 맡겨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시고 허락하신 능력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하라고, 우리에게 하느님의 관리자로서 이 세상을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일에는 그 자체로 잘남과 못남이 없고 높음과 낮음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단 한가지 모두에게 맡겨진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판단력을 허락하신 하느님인 것이고, 하느님의 뜻일 뿐입니다.
그런 하느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겸손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겸손이 진정한 잘남과 높음의 기준이 되는 소중한 가치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겸손이야말로 감추어진 나를 들어 올리는 최선의 방법이고, 다른 이들로부터 인정
받고 존경받을 수 있는 최상의 방법임을 분명히 밝히시는 것입니다.
그럼 진정한 겸손이란 어떤 것일까요? 겸손(Humilitas)이란 말은 라틴어 ‘humus’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흙, 땅, 대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땅이 세상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는 것처럼, 좋은 것, 나쁜 것, 싫은 것 구분 없이 자신에게 찾아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며 모든 만물을 정화하여 성장시키는 것처럼, 우리
도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느님 겸손의 극치인 “예수님의 강생사건”이 우리에게 보여주듯, 겸손의 길은 이런 땅과 같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라고 초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도, 진정한 겸손의 자세가 땅이 온갖 것들을 구분 없이 받아들이고 정화시키는 것처럼, 어떤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는 전적인 수용과 베품과 나눔의 자세로, 진정한 사랑의 마음으로 살아 가는 것임을 분명히 밝혀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진정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삶의 향기]
캐나다 수녀님과 두물머리 하늘이
맹주형 아우구스티노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교육부장)
얼마 전 정동 수도원에서 팔당 농민들과 함께 유기 농지 보존을 위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사실 급하게 마련된 이 미사는 팔당 농민들의 더 급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남양주 조안면 일대 농민들에 대해 서울지방 국토관리청의 공탁이 신청되었고, 공탁이 신청되었다는 것은 이제 농민들과 농지에 대한 강제적인 행정대집행만이 남은 상황이어서 급히 서울, 수원, 의정부교구 신자들과 신부님들이 모인 것입니다.
미사를 마치고 우리는 농민들이 마련한 김밥을 나눠 먹고 정동 수도원 옆에 있는 서울지방 국토관리청에 갔습니다. 그 앞에서 노래공연과 팔당농민들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후 농민들은 신부님, 목사님과 함께 국토관리청장을 면담하러 갔습니다. 청장 면담이 생각보다 길어져 밖에 남은 우리는 함께 노래도 하고 인사도 나누었습니다.
그 가운데 수녀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골롬반 수도회 신부님과 함께 멀리 캐나다에서 오신 수녀님이었습니다. 저는 팔당 농민께 캐나다 수녀님 소개를 부탁드렸고 수녀님께서는 흔쾌히 마이크를 잡고는 서툴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였습니다.
‘강은 어머니입니다’라고 적힌 하늘색 티셔츠를 입은 수녀님은 우리에게 “하느님 창조물을 보호 하는 역사적인 현장에 함께 할 수 있어 너무나 감격스럽다”고 말하고는 4대강을 지키려는 한국 신자들의 노력은 정치적 행위가 아닌 “신앙의 행위”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자신과 다른 모든 피조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생태계를 보호해야 합니다.”고 말하며 한국 신자들의 노력에 깊은 연대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올 여름 최고 온도를 갱신하는 폭염 속에 길거리에 앉아 있던 우리에게 큰 힘이 된 시원한 이야기였습니다. 떠나시며 수녀님은 팔당 두물머리에서 농사짓는 서규섭 농민의 딸 ‘하늘’이를 만났습니다. 하늘이와 손잡고 환하게 웃는 수녀님의 모습은 영락없는 ‘어머니 강’의 모습이었습니다.
[윤종식 신부님의 신앙돋보기]
제대 위의 십자고상의 방향은?
“교회는 “제대 위나 가까이에,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형상이 있는 십자가를 모인 백성이 잘 바라볼 수 있도록 놓아둔다. 이러한 십자가는 신자들의 마음에 주님 수난의 구원 업적을 기억시켜 준다. 십자가는 전례를 거행하지 않을 때에도 제대 가까이에 둔다.”(미사 총지침 308항)라고 제대 주변의 십자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십자고상에서 예수님 형상이 신자들을 향해야 하며, 제단 벽면에 십자가가 있으면 제대 위의 십자고상은 사제용이라 생각되기에 사제를 향한다.
[이 주간의 말씀과 생활]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루카14,11)
<떡갈나무와 갈대>
어느 냇가에 하늘 높이 솟은 떡갈나무가 있었습니다. 다른 나무들은 그 떡갈나무를 부러워했고, 떡갈나무는 “나는 언제나 너희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고개를 숙이지 않아. 나야말로 가장 강하니까.” 하고 마음껏 자랑을 했습니다. 어느 날 무서운 태풍이 휘몰아쳤고, 무서운 소리를 내며 모조리 쓰러뜨려 버렸습니다.
“태풍에게 지다니. 어디 해 볼 테면 해봐!” 떡갈나무는 이렇게 말하며 태풍 앞에서 있는 힘껏 버텨냈습니다. 가지가 뚝뚝 부러져 나갔고, 잎은 빗방울처럼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우지직 꽝! 무서운 소리를 내며 떡갈나무는 드디어 뿌리째 뽑혀서 쓰러져 버렸습니다. 태풍이 지나가자 떡갈나무는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러자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건강한 모습으로 서 있는 갈대가 보였습니다.
“갈대야, 너는 어떻게 그 무서운 태풍 앞에서 상처 하나 입지 않고 견뎌냈니?”
“ 당신은 억지를 쓰니까 그래요. 아무리 당신이 강해도 태풍과 맞서서는 견디지 못해요.
나는 언제나 맞서지 않고 고개를 숙이기만 하니까, 그렇게 거센 태풍에게도 상처 하나 입지 않고 견딜 수가 있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생 활 실 천)
◆ 만나는 사람마다 3초 먼저, 내 쪽에서 인사하기.
◆ 평소에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사람에게 인사하기.
◆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에게도 인사를 해 보기.
[함께하는 세상]
본당에서 실천하는 창조보전운동
본당이나 각종 교회의 행사에서 과소비를 삼가고 일회용기, 일회용 티백, 봉지커피 등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환경친화적인 본당공동체를 만들어봅니다.
본당의 시설물을 에너지 절약형으로 바꿉니다. 담장을 없애볼까요, 울타리를 없애고 쉼터를 만들어 이웃과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고 콘크리트로 덮여있는 마당을 녹지공간으로 바꾸어 봅니다. 아나바다장터를 만들어 녹색소비를 정착시키는 것, 매년 실시하는 여름캠프와 수련회는 자연속의 생태캠프로 기획, 진행합니다. 우리농매장을 만들어 생명농산물을 나눕니다. 본당 내의 창조보전운동, 지역환경운동을 전개하는 구심점이 되고 나아가 선교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제2회 아시아평신도대회 기도문
온 세상의 주님이시고 창조주이시며 자비로우신 아버지, 찬미 받으소서.
저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시아의 거룩한 작은 고을에서 태어나시고 돌아가셨으며 죽음에서 부활하셨나이다.
주님, 구하오니 세상의 유일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고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저희의 아름다움을 증거할 수 있도록 ‘아시아가톨릭평신도대회’를 강복하시고 저희에게 성령의 선물을 내려주시며 저희 안에 성령강림의 특은을 새롭게 하소서.
또한 복음 때문에 박해 받는 이를 지켜 주시고 가난으로 고통 받는 이를 위로하여 주시며 저희 모든 백성들에게 당신의 얼굴을 비추어 주소서.
순교자들과 증거자들의 여왕이시며 복음화의 찬란한 별이신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통하여 이 모든 것을 구하나이다.
아멘
[생활의 비타민]
사랑이 아닌 것 4가지
지나치게 부드러운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부모가 자녀의 원대로 다 해주는 것과 자녀가 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보고도 기가 죽는다고 제지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질서를 모르고 남을 생각하는 법을 모르면서 살려진 기는 삶의 위기를 불러옵니다.
지나치게 엄격한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방법이 틀리면 구속이 되고, 기를 너무 죽이면 오히려 기회까지 빼앗게 됩니다.
지나치게 소유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큰 사랑의 테두리를 치고 자녀가 때론 방황하고 실패해도 자녀가 그 상황을 스스로 극복하도록 묵묵히 지켜보십시오.
지나치게 방임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자녀의 삶에 대한 부모의 지나친 개입은 불필요하지만, 자녀의 영혼을 향한 부모의 영혼 이입은 무엇보다도 필요합니다.
'의정부주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중 제24주일, 순교자성월 - 2010년 9월 12일(다해) (0) | 2010.09.12 |
---|---|
연중 제23주일, 순교자성월 - 2010년 9월 5일(다해) (0) | 2010.09.05 |
성모 승천 대축일 - 2010년 8월 15일(다해) (0) | 2010.08.15 |
연중 제19주일 - 2010년 8월 8일(다해) (0) | 2010.08.08 |
연중 제18주일 - 2010년 8월 1일(다해) (0) | 2010.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