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韓·日 강제병합 100년

[4·끝] '韓·日 신시대 공동연구위원회' 하영선·오코노기 위원장 대담

namsarang 2010. 9. 3. 22:53

[韓·日 강제병합 100年, 내일을 말한다]

"급부상 중국, 어디로 갈지 몰라… 준비 없는 北붕괴는 막아야"

[4·끝] '韓·日 신시대 공동연구위원회' 하영선·오코노기 위원장 대담

하영선 위원장
한·일 감정 앙금 남았지만 젊은 세대는 변화하는 중… 동아시아인 정체성 필요
오코노기 위원장
북한을 개방으로 이끌려면 한국·일본 협조가 필수… 당분간 日·北수교 힘들어

역사의 시계는 일본의 한국 강제병합 100년(8월 29일)을 지나 또 다른 100년으로 들어섰다. 과거사의 짐은 여전한 가운데 동아시아에는 또 다른 변화의 물결이 다가오고 있다.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학자인 하영선(河英善) 서울대 교수와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일본 게이오(慶應)대 교수가 격변하는 동아시아 질서와 한·일관계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은 한·일 관계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고 있으며 향후 협력 필요성이 증대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향후 동아시아 질서의 향방을 가를 중국에 대한 대응 부분에서는 미묘한 시각 차이를 드러냈다. 대담은 지난 8월 18일 도쿄 마이니치(每日)신문 편집국 접견실에서 진행됐다.

하영선 서울대 교수(오른쪽)와 오코노기 마사오 일본 게이오대 교수가 지난 8월 18일 도쿄 마이니치신문 편집국 접견실에서 한·일관계의 미래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마이니치신문 제공

과거사 정리

하영선=조선과 일본은 100년 전 비극적으로 만났다. 한국인은 여전히 잊어버릴 수 없다. 일본인들은 대부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게 됐다. 한국은 이제 그만 사과하라고 하고 일본은 더 사과하겠다고 하는 때가 올 때 진정한 의미의 과거사 정리는 이뤄질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정체성의 이중화'가 필요하다. 한국인인 동시에 동아시아인, 일본인인 동시에 동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 자각이다. 100년 전 비극은 동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없는 가운데 일국적 이해관계의 충돌로 일어난 것이다. 100년 전에 가장 치열한 적대관계였다면, 앞으로는 서로를 품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도 일본도 더 성장해야 한다.

오코노기=일본과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세계가 더 빨리 돌아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리얼리즘이다. 지금의 상황을 중시하는 것이다. 과거를 잊자는 얘기는 아니다. 일본인은 상대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계속 배워야 한다. 한국이 피해자 입장이라서 이쪽에서 주문하기는 이상하지만, 역시 일방적으로 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은 좀 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너무 이상이나 이데올로기를 토대로 가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상을 따라잡지 못하는 시대다.

독도 문제

오코노기=걱정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영토문제인데 이게 역사 문제와 결부돼버렸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속성을 증명하는 것, 침략의 첫걸음이라고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들어가버렸다. 이 문제는 일·한 국교정상화 때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다. 일·한 간에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리얼리즘이 아니다. 관리라는 표현이 적합할지는 모르겠으나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는 점을 알고 후회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시간을 갖고 우회해야 한다. 경제교류가 더 활발해지고 공동체 같은 게 생기는 때가 오면 문제는 아주 작아져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가만히 세월만 기다린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단기적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라는 점에 대한 이해는 필요하다.

변화하는 한·일 관계

=지금 한국과 일본 간에 이해관계를 계산하는 방식의 협력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가슴과 가슴이 만나는 방식의 앙금 해소가 자리 잡기에는 과제가 많이 남았다. EU 같은 국가연합 방식이 구축된다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바로 유럽처럼 가기는 어렵다. 그 이전에 네트워크를 심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한·중·일뿐 아니라, 북한과 미국까지 포함해서 훨씬 긴밀한 네트워킹 심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오코노기=두 나라의 시민사회가 성숙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10~20년 전이라면 이번 간 나오토 담화가 나오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한국도 더 강하게 비판했을 것이다. 의식의 변화는 일본 쪽이 더 강하다. 한국의 경제성장과 민주화 그리고 양국 간 대중문화 개방 등을 거치면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지고 있다. 한류 붐도 월드컵 공동개최도 그런 분위기에서 나온 것 아닌가. 한국에서는 이제 변화가 본격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는 객관화되는 단계다. 일본을 하나의 나라로 생각한다. 그런 이미지 변화의 가속화를 위해 일본의 노력이 더 절실할지 모른다. 특수한 과거사를 가지고 있지만 어차피 다뤄야 하는 공간의 세계가 훨씬 넓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현대 세계의 특징 중 하나가 복합성이다. 국가 대 국가라는 근대적 의미의 국제관계에 비해 훨씬 복합적이다. 이 복합성을 찾아나가는 것이 21세기에 주어진 임무이자 권리다.

오코노기=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10년, 20년 후 일본과 한국을 상상해보라고 한다. 거의 비슷한 두 개의 나라가 나온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미국과의 동맹 등 체제문제 외에 산업구조도 비슷하다. 저출산 고령화, 환경산업 중시도 똑같다. 군사대국이 되고 싶은 생각은 서로 없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나라다. 바꿔 말하면 전략까지 공유해야 할지 모른다. 체제가 비슷하고 목표도 비슷한데 전략도 비슷해질 수밖에 없지 않나. 일본과 한국 모두 이 점을 아직 냉정하게 보려 하지 않는다.

중국의 급부상

=2100년에 조선일보와 마이니치신문이 21세기를 돌아보는 특집을 할 경우 가장 큰 사건이 무엇일까. 아마 중국의 부상일 것이다. 청·일 전쟁의 좌절로부터 100여년 만에 지난 2분기 GDP가 일본을 넘어섰다. 2015년이면 중국은 10조달러에 가깝고 일본은 6조달러 정도일 것이다. 머지않아 미국경제와의 폭이 얼마나 좁혀지느냐가 초점이 될 것이다. 중국이 정신없이 달리는 열차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노력해야겠지만 주변국들의 노력, 지구적 노력도 필요하다. 중국을 품어야 한다. 중국을 바깥이 아닌 안에 놓고 공동대응 전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정체성의 이중화라는 것은 여기에도 필요하다.

오코노기=가장 이상적인 것은 중국이 스스로 내부 모순을 해결하고 민주화해서 동아시아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고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다. 중국이 발전하고 있으나 사회문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루에 몇 번이나 폭동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정도다. 중국은 앞으로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에 의존하지 않는 게 좋다. 스스로 아시아의 중심이라고 생각해서 중화제국주의적 시스템으로 가게 되면 공존하기 힘들어진다. 그때 일본과 한국이 협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문제에 대해 한국과 일본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언론도 학계도 그렇다. 후진타오 주석이 2008년(개혁·개방 30주년 기념대회)에 한 유명한 연설이 있다. (공산당 수립 100주년인) 2049년을 내다보면서 '우리가 가려 하는 새로운 국가모델이 등장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오코노기 선생 말씀처럼 가치와 행동의 원칙을 공유하는 형태의 모델로 가면 동아시아 공동체 문제가 잘 풀려갈 수 있을 것이다.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정치체제가 경제발전에 상응해서 잘 바뀔 것인가가 첫째다. 두 번째는 중국도 중국 나름의 한 맺힌 역사가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한 맺힌 역사를 넘어 동아시아와 세계를 품는 책임국가로서 시야를 전환하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40년 정도 남았는데 가까이 있는 한국과 일본,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미국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숙제다. 한국 입장에서는 일정한 힘의 견제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하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항상 유지하는, 이중적인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이게 아시아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그걸 하지 못하면 21세기 동아시아는 엄청난 체력 소모를 할 수밖에 없다.

오코노기=반드시 힘으로 억제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힘이 아닌 소프트파워로 하는 게 현명할지 모른다. 하 선생 말씀처럼 그런 의미에서 이중적 사고가 중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북한 문제

=후계체제가 9월에 이뤄질지 2012년에 이뤄질지 모르겠지만 시간문제일 수밖에 없다. 핵을 포함한 선군정치로 갈 수밖에 없었던 한계를 이번에는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일차적으로는 본인들이 해야 하지만 후계체제에만 짐을 맡길 수는 없을 것이다.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은 한국·일본·중국·미국일 수밖에 없다. 핵이나 선군정치로는 21세기에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 강성대국전략은 비생산적이라는 사실, 이런 사실에 대한 인정을 강제할 수는 없으나 다른 대안도 있다는 점을 알려주기 위한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오코노기=어떻게든 개혁·개방, 시장경제체제로 이끄는 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일본과 한국이 협조할 수 있다면 그 부분일 것이다. 일·북 국교정상화 없이, 남·북 경제협력 없이 북한이 폐쇄경제를 개방할 수 있는가. 동아시아의 시장통합이라는 것도 북한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런 준비 없이 갑자기 무너지는 것은 한국에도 일본에도 두려운 사태다. 하지만 일·북 관계는 당분간 개선되기 어렵다. 핵도 핵이지만 일본에서는 납치 문제가 더 어렵다. 총리 담화에서도 북한은 빠지지 않았나. 일본 정부가 국교정상화를 하겠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일본 국내 반발 때문이다. 당분간 개선되기는 어렵다.

☞한·일 신시대 공동연구위원회

하영선 교수와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는 2009년 2월 출범한 ‘한·일 신시대 공동연구위원회’의 양측 위원장을 맡고 있다. 위원회는 1년6개월간의 논의 결과를 취합, 21개의 미래 협력 과제를 9월 중에 양국 정부에 제안할 예정이다. 이 내용을 다음 한·일 정상회담에서 논의, 사안별로 실행 단계에 들어가게 된다. 공동위원회 설치는 2008년 이명박 대통령과 후쿠다 야스오 당시 일본 총리 간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것으로 두 나라 정부는 논의 성과가 긍정적이라고 보고 향후 2년간 더 연장하기로 했다.

하영선 서울대 교수(사진 왼쪽),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

●하영선(河英善) 서울대 교수

한반도를 둘러싼 전쟁과 평화, 전략문제를 주로 연구해왔다. 1947년생.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이후 미 워싱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부터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정치학자로 자리 잡았다. 2009년부터 한·일 신시대공동연구위원회 한국측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등 많은 저서가 있다.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대 교수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일본 내 최고 권위의 전문가다. 1996년 ‘한·일 공동연구포럼’ 일본측 위원장, 2002년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위원, 2009년 한·일 신시대 공동연구위원회 위원장(현)을 맡아 한·일관계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을 주로 해왔다. 1945년생. 게이오대 법학과를 나와 현재 법학부 정치학과 교수로 있다. 한국어도 능숙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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