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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주 못마시면 수사 못하나요” 여검사들의 항변

namsarang 2010. 12. 13. 21:07

[기자의 눈/이서현]

 

“폭탄주 못마시면 수사 못하나요” 여검사들의 항변

 

 



“‘검사라면 폭탄주 열 잔은 마셔야 하지 않냐’란 말을 들어보셨을 거예요. 그런데 폭탄주 못 마시면 일 못하나요?” “남자가 대부분인 조직이라서 그런지 문화가 지나치게 권위적이고 회식도 술 위주예요.”

검찰 내 음주문화의 상징인 폭탄주가 외부 사람도 아닌 내부 여검사들에게 집중포화를 맞았다. 10일 오후 2시 경기 용인시 법무연수원에서는 전국 일선 검찰청의 여검사 1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워크숍을 가졌다. 최근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사건 등이 연이어 터지면서 여검사의 시각에서 남성 위주 조직의 대표 격인 검찰의 조직문화와 발전적 대안을 짚어보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여검사들은 12개 조로 나뉘어 난상토론을 벌였고, 평소 느꼈던 검찰 내 조직문화에 대한 생생한 얘기가 쏟아져 나왔다.

충주지청 정가진 검사는 “술을 마시고 서로 등을 두들겨 주다 보면 동료애가 싹튼다지만 그런 음주문화 때문에 접대 유혹에도 노출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검사는 “어떤 직업이든 외부 청탁에 대한 유혹이 있는데 일부 사례로 전체 조직이 부패한 것처럼 호도돼 가슴이 아팠다”고 털어놨다. 음주 위주의 회식문화가 결국 여자 검사들과 남자 검사들의 소통 부재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두 시간에 걸친 토론은 접대가 통하지 않는 청렴한 이미지의 여검사들이 검찰문화의 변화를 주도해 나가야 한다는 데 모아졌다. 수원지검 허윤희 검사는 “술이나 골프 등 검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여성 검사들을 활용해 국민에 대한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폭탄주가 비리의 근원은 아니겠지만 1999년 한 검찰 간부가 폭탄주를 마신 뒤 ‘조폐공사 파업유도’ 발언을 해 결국 구속되기까지 했던 것을 비롯해 최근의 스폰서 검사 사건까지 폭탄주문화가 검찰 조직에 적지 않은 피해를 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 과정에서 폭탄주를 자제하는 분위기가 많이 확산됐지만 일부 남성 검찰 간부는 ‘끈끈한 상명하복 관계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후배 검사들에게 아직도 폭탄주를 권하고 있다.

전국 1700여 명의 검사 중 여검사는 365명으로 약 20%에 불과하지만 매년 임관하는 검사의 절반이 여성일 정도로 여검사 비율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최초의 여성 검사장 배출도 눈앞에 두고 있다. “술 못 마셔도 수사는 잘할 수 있다”는 여검사들의 각오대로 이들이 올해 공공기관 청렴도 조사에서 꼴찌를 기록한 검찰의 면모를 확 바꾸길 기대해 본다.

―용인에서 이서현 사회부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