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신의진]
무상급식 논쟁의 최대 피해자는?
병원에 온 9세 여자아이와 상담하다가 무상급식 이야기가 나왔다.
초등학교 2학년인 이 아이에게 “요즘 힘드는 일은 없니?”라고 묻자 대뜸 급식 이야기를 꺼냈다.
“어른들이 공짜로 밥을 주느냐 마느냐 하면서 자꾸 싸워서 걱정이에요. 왜 먹는 걸 가지고 싸우지요? 밥은 우리가 먹는데 밥값을 내느냐 마느냐, 얼마 내느냐 싸우니까 밥맛이 떨어져요.”
“어른들 싸움에 밥맛 떨어져요”
다른 10세 남자아이의 말도 비슷했다.
“친구들과 매일 똑같은 반찬을 먹어야 하니 지루해요.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면 안돼요?”
지난해부터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정치적 논쟁의 대표적인 ‘무상급식’ 이슈가 새해에도 계속되고 있다. 무상의료, 무상보육과 더불어 ‘무상 시리즈’ 논쟁으로도 번졌다.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학교 급식은 곧 엄마의 복지와 직결되는 문제다. 우리 엄마 세대는 끼니와 아이 수에 따라 도시락을 예닐곱 개씩 준비하곤 했다. 무상급식 이슈에 대해 솔직히 급식은 당연히 하는 것이라는 전제 아래 돈을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생각해 왔다. 그런데 아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다시 들여다보게 됐다.
기타 복지 서비스와 달리 아이들 급식 문제는 뭔가 다른 감정적인 울림이 느껴진다. 아이들 먹을거리조차 빈부의 차이를 주면 안 된다는 주장은 국민 모두 반대하기 힘들다. 합리적 이유를 들어 급식비용을 제한하거나 대안을 내면 논리적으로는 수긍을 이끌어 낼 수 있지만 냉정하고 인간미 없는 사람으로 보일 것 같다. 선뜻 다른 의견을 내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여론을 의식하는 정치가 또는 아이를 기르고 교육하는 어른들의 계산적 시각을 떠나 아이들의 시각에서 이 주제에 대한 논쟁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점은 아쉽다. 매일 학교에서 먹는 점심 값을 우리 부모가 내야 하는지, 아니면 나라에서 공짜로 제공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을 바라보는 아이들은 과연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가질까.
우리 세대가 어릴 적 학교에서 점심을 먹을 때 기억을 떠올려보자. 오전 수업이 끝나고 배가 출출한 점심시간이 되면 각자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딸그락거리며 펼쳐봤다. 옆 짝 그리고 앞뒤로 앉은 친구와 삼삼오오 모여 서로 반찬을 공유하며 맛있게 식사를 했다. 친구들과 나눠 먹으라고 일부러 귀한 반찬을 양껏 보내는 어머니도 있었다.
포만감과 어머니의 정성으로 마음까지 훈훈해진 아이들은 세상과 자신에 대한 충만감으로 공부에 지친 심신을 달랠 수 있었다. 어른이 된 뒤에도 어린 시절 도시락 냄새, 소박한 반찬에 대한 선명한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양은 도시락에 밥과 반찬을 넣어 파는 전문 식당이 등장했을 정도다. 단순한 도시락이 아닌 추억을 섭취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추억 선물할순 없을까
이런 도시락 대신 학교 급식으로 점심 문화를 바꿀 때 어른들은 아이들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 도시락 싸기 힘든 엄마들의 시각, 학교 급식을 통해 질 높은 식사를 제공한다는 영양적 교육적 시각, 빈부 격차 없이 모든 아이가 저렴한 비용으로 점심을 먹을 수 있다는 복지적 시각을 가진 어른들의 동의로 갑자기 아이들은 학교에서 모두 같은 음식을 줄서서 받아먹는 문화를 받아들여야 했다. 물론 학교 급식이 아이들에게 모두 나쁘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학교 급식의 당위성만 강조했지 이로 인해 아이들이 무엇을 잃게 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았다. 그 전통이 또다시 ‘무료급식’이라는 주제로 되살아나고 있다.
아이들에게 식사는 단순히 영양성분을 섭취하는 과정이 아니다. 밥을 먹을 때 사랑도 함께 먹는다. 학교 급식 관련 정책을 만들 때 수혜자의 감정적 반응을 배제한 채 물질적 경제적 가치로만 논하는 일은 가슴 아프다. 더구나 아직 가치관이 완성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너희들의 점심 값을 부모가 아닌 국가가 지불하는 것이 옳다 그르다는 논쟁을 첨예하게 보도록 하는 일이 어떤 효과를 가지고 올 것인지도 우려된다.
아이들은 밥을 먹으며 그것을 제공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과 정을 떠올릴 권리가 있다. 아이들이 말은 못하지만 ‘가정표 도시락’을 더 원할지도 모른다. 먹는 문제를 획일적으로 돈의 문제, 물질적 가치만으로 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냉혹함을 아이들이 배울까 봐 두렵다.
한국은 빠른 시간에 압축 성장을 하고 경제적 발전을 이뤘다. 이제는 복지가 대세라고 주장하지만 복지는 돈으로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복지의 틀은 따스한 마음이 베푸는 사람과 베풂을 받는 사람 사이에 서로 전달되며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잡아야 한다. 예산 몇 푼 더 배정했다고 복지가 되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수혜자 개인의 입장과 감정을 배려한 따스한 시각이 결여되면 오히려 그 돈 때문에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신의진 연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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