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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가면’ 뒤의 북한을 보라

namsarang 2011. 1. 22. 22:38

[오늘과 내일/방형남]

 

‘대화 가면’ 뒤의 북한을 보라


북한의 집요한 대화공세가 먹혀 결국 남북 당국이 만나게 됐다. 우리 정부가 역()제의를 하며 받아치기도 했지만 북한이 신년공동사설에서 제시한 ‘대화와 협력 분위기’로 상황이 급변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을 저지른 북한은 어느새 긴장 완화를 주도하는 세력으로 변해 떵떵거린다. 북한의 대화 제의를 ‘위장평화 공세’로 치부했던 정부의 목소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런 기막힌 반전()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북한 연감에는 남한이 없다

미국과 중국의 정상회담 직후에 남북대화가 성사돼 우리가 과연 한반도의 주인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헷갈린다. 가닥을 제대로 잡으려면 북한의 속셈을 꿰뚫어봐야 한다. ‘대화 가면’ 뒤 북한의 민얼굴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가면무도회 초청장을 받았다고 아무 생각 없이 달려가 주최 측의 연주에 맞춰 밤새도록 춤을 출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최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발행한 2010년 ‘조선중앙연감’을 보면 북한의 민얼굴이 보인다. 우선 지하철역에서 나눠주는 무료신문 지질보다 못한 갱지로 만든 책에서 북한의 가난이 뚝뚝 묻어난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이 ‘전국의 모든 선거자들에게 보내는 감사문’을 앞에 모시면서도 초라하기 짝이 없는 연감을 만드는 불경죄()를 저질렀다.

북한 연감에 남한은 존재하지 않는 나라다. 조선자연과 조선행정구역을 표시한 지도에는 휴전선이 없다. 남북한 전체가 북한이 주장하는 ‘우리나라’다. 연감은 세계 각국의 정치체제 경제력 등을 소개하면서 남한은 뺐다. 유엔 회원국 명단에도 북한이 1991년 9월 17일 가입한 사실만 기록하고 남한을 제외했다.

 

조국통일과 북남관계’라는 항목에 남한이 나오기는 하지만 현실 속의 국가가 아니다. 남한은 김일성과 김정일을 찬양하고 흠모하는 보도와 주장의 출처로, 괴뢰정권과 우익 보수세력이 반()통일 사대 매국행위를 하는 곳으로, 1년 내내 인민들의 투쟁구호가 넘치는 지역으로 묘사됐다.

조선중앙통신은 북한 유일의 국영통신사다. 노동당과 내각의 공식 대변기관으로서 대남() 선전과 선동에 동원된다. 조선중앙통신은 어제도 북한의 책임은 단 한마디도 거론하지 않은 채 “남북관계가 분열사상 최악의 사태에 처해 있다”며 모든 잘못을 남한에 떠넘기는 기사를 내보냈다.

김대중 정부는 2002년 남북 교류와 소통을 이유로 조총련 조선통신과 연합뉴스의 조선중앙통신 기사공급 계약을 승인했다. 김정일 정권의 선전용 기사를 받는 대가로 남한 언론이 많은 돈을 지불하는 한심한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보내는 기사에는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뉴스는 없다. 북한이 겪고 있는 참혹한 경제난과 혼란은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을 비롯한 외부 매체를 통해서 알려질 뿐이다.

선전선동 차단대책 시급하다

연합뉴스가 북한 기사를 우리 국민에게 알리는 과정에도 문제가 있다.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소지가 있는 것이다. 북한의 신년공동사설을 다룬 연합뉴스 기사는 ‘북한이 남북 간 대결상태 해소를 강조하면서 대화와 협력을 추진해 남북관계를 복원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로 시작된다. 조선중앙통신 원문에 들어있는 ‘핵 참화’ 협박은 기사에서 빠졌다. 이런 식의 보도가 계속되면 알게 모르게 국민 속에 북한의 선전선동이 스며들게 된다.

남한을 존재하지도 않는 나라로 취급하는 북한이 당국자 회담에 나와 할 소리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무력화 같은 상투적 생떼가 나올 것이다. 대화에 나서는 정부 당국자는 ‘대화 가면’ 뒤 북한의 민얼굴을 끊임없이 떠올려야 한다. 북한의 선전공세에 국민이 오염되지 않게 하는 대책 마련도 정부가 할 일이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