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변소간의 비밀
- 박 규 리 -
십년 넘은 그 절 변소간은 그동안 한번도 똥을 푼 적 없다는데요 통을 만들 때 한 구멍 뚫었을 거라는 둥 아예 처음부터 밑이 없었다는 둥 말도 많았습니다 그 변소간을 지은 아랫말 미장이 영감은 벼락 맞을 소리라고 펄펄 뛰지만요, 하여간 그곳은 이상하게 냄새도 안 나고 볼 일 볼 때 그것이 튀어 엉덩이에 묻는 일도 없었지요 어쨌거나 변소간 근처에 오동나무랑 매실나무가 그 절에서는 가장 눈데 띄게 싯푸르고요 호박이랑 산수유도 유난히 크고 환한 걸 보면요 분명 뭔가 새긴 새는 것이라고 딱한 우리 스님도 남몰래 고개를 갸우뚱거리는데요 누가 알겠어요, 저 변소는 이미 제 가장 깊은 곳에 자기를 버릴 구멍을 스스로 찾았는지도요 막막한 어둠 속에서 더 갈 곳 없는 인생은 스스로 길이 보이기도 하는 것이어서요 한줌 사랑이든 향기 잃은 증오든 한 가지만 오래도록 품고 가슴 썩은 것들은, 남의 손 빌리지 않고도 속에 맺힌 서러움 제 몸으로 걸러서, 세상에 거름 되는 법 알게 되는 것이어서요 십년 넘게 남몰래 풀과 나무와 바람과 어우러진 늙은 변소의 장엄한 마음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만도 하지만요 밤마다 변소가 참말로 오줌 누고 똥 누다가 방귀까지 뀐다고 어린 스님들 앞에서 떠들어대는 저 구미호 같은 보살 말고는, 그 누가 또 짐작이나 하겠어요
박규리 :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나 1995년 『민족예술』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이 환장할 봄날』에 가 있음
출처 : 『이 환장할 봄날에』 , 창비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