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병직]
갈등에서 공존으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민 통합이나 사회 통합이 정치적 화두로 떠올랐다. 필자는 일찍이 이 문제를 제기한 사람 중 한 명이다. 동아일보도 이 주제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였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 간의 공존을 주제로 1년 넘게 특집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사회 구성원 간의 공존을 위한 노력이 한국의 선진화를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사실이 국민 사이에 널리 인식되기에 이른 것이다.
편가르기는 뿌리깊은 역사적 산물
보수정권에 들어와서 사회 통합이 정치적 화두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던 시대적 배경은 무엇인가. 그것은 진보정권하에서의 이분법적 사고에 의한 국민 분열의 조장이었다. 진보정권에서는 국민을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 혹은 수구보수와 개혁진보로 가르기를 즐겼다. 이러한 편 가르기는 단순한 진보정권의 선호라기보다 뿌리 깊은 역사적 배경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광복 직후 김구 선생은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했다. 단독정부 수립으로 민족이 분단되느니 차라리 38선을 베고 죽겠다는 것이다. 당시 북한은 이미 토지개혁을 단행하고 인민위원회를 결성하여 소련의 지도하에 단독정부를 건설하고 있었다. 남한도 정부를 수립할 수밖에 없는 것이 객관적 상황이었다. 굳이 분단사학과 분단체제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정부 수립은 이미 갈등의 산물로 인식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의 독립국가를 수립하기는 했으나, 군사적 경제적 자립성도 없이 미국에의 의존으로부터 출발했다. 5·16군사정변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내세운 근대화 정책도 외자 의존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1960년대 이후 전개되어 온 근대화 운동과 민주화 운동 간의 대립과 갈등은 근대화의 성공과 실패를 둘러싼 것이 아니라 자주냐 종속이냐, 통일이냐 분단이냐를 둘러싼 서로 화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진보정권 시기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위와 같은 한국 현대사에 대한 피상적 이해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들은 단독정부의 수립과 근대화 정책이 아직도 분단을 초래하고 대미종속을 심화한 것으로 오인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은 그와는 정반대이다. 대한민국은 건국과 경제개발 계획으로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주요 20개국(G20) 중 하나로 비약했다. 대한민국은 자주와 자립의 기초 위에서 선진화와 통일을 전망하기에 이르렀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지금까지 진보진영은 국민 분열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0년 반미 촛불시위, 2007년 광우병 파동 및 작년 천안함 음모론 등이 모두 그러한 것이다. 이러한 진보진영의 행동방식은 지난날 민주화 운동기의 그것과 조금도 다른 바가 없다. 한국은 과거나 지금이나 수구보수와 개혁진보의 구도 속에서 잠자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현대사는 그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돼 왔다.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기반을 닦고, 박정희는 경제 발전을 달성했으며, 지금의 보수세력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선진화를 위하여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사적으로 한국의 보수세력보다 더 진보적인 역할을 한 정치세력이 어디에 있었던가. 한국의 진보세력이 지향했던 사회주의는 이미 역사적 전망을 상실한 지가 오래다. 북한의 현실은 더욱 참담하다.
진보진영 이분법적 사고 벗어나야
한국의 진보세력이 특히 크게 깨달아야 할 점은 세계사적으로 볼 때 대한민국에서는 앞으로 체제 변혁의 전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 체제를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선진화로의 전망도 없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남아 있는 진보세력의 선택지는 한 가지뿐이다. 사회민주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 간의 경쟁과 협력이 보수와 진보가 갈등을 극복하고 공존을 모색할 수 있는 조건이다.
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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