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5층빌딩 옥상서 내가 29명에게 소개
6·25전쟁 나기 전까지 박정희를 빨갱이로 의심
5·16마스터플랜은 내 작품… 이집트·터키혁명이 교과서
올해로 '5·16'이 50년을 맞는다. 한강 인도교에서 첫 총성이 울린 지 반세기, 5·16은 공과(功過)에 대한 논란과는 별개로 우리 현대사를 바꿔놓았다. 5·16을 기획하고, 실행했던 사람은 김종필(85) 전 총리였다. 김 전 총리는 지난 8일 서울 자택에서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당시를 소상하게 설명했다. 본지는 이를 격일로 세 차례에 걸쳐 나눠 싣는다.김 전 총리는 인터뷰에서 "5·16에 적극 가담한 육사 8기생들을 비롯한 혁명군 핵심 장교들에게 박정희 소장을 '혁명 지도자'로 소개한 것은 거사로부터 불과 40일 전인 1961년 4월 7일이었다"고 말했다. 서울 충무로에 있는 한 5층 빌딩 옥상에 모인 29명에게 박 소장을 소개하자 장교들이 "와" 하고 소리를 지르며 반겼다는 것이다.
- ▲ 김종필 전 총리.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김 전 총리는 "(당시 5·16 작전을 세울 때) 서울을 비롯한 중앙은 내가 맡고 그 외곽은 박정희 소장이 맡는 것으로 했다"고 말했다. 김 전 총리는 "핵심은 박 소장이었고, 나는 돕는 일을 했다"면서도 당시 두 사람이 혁명세력 규합, 가담자 접촉 등에서 역할분담을 했다는 것을 분명히했다. 김 전 총리는 "5·16의 전체적인 마스터 플랜은 철저히 나 혼자서 다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김 전 총리는 "나세르가 나기브와 함께 일으킨 이집트혁명(1952년)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었다. 터키의 케말 파샤가 청년장교들과 일으켰던 혁명(1923년)도 참고로 했다"고 말해 두 혁명이 5·16의 '교과서'였다고 밝혔다.
김 전 총리는 당시 미국 CIA(중앙정보국)도 장면 정권의 혼란상을 부정적으로 보았으나, 접촉하고 있던 인물은 박정희가 아닌 박병권(1920 ~2005·국방장관 역임) 장군과 장도영(최고회의 의장 역임) 장군이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서울엔 '크레퍼 대령'이라는 가명(假名)으로 미 CIA 간부가 와 있었고, CIA는 족청(조선민족청년단)계의 지도자 박병권 장군과 손을 잡고 (장면 정권을) 뒤집으려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 전 총리는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자신조차 박정희를 사상적으로 좌익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었다고 털어놓았다. 김 전 총리는 "6·25가 터지자 그가 빨갱이라면 한강을 넘지 않을 것이고, 아니라면 한강을 넘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한강 너머 수원으로 후퇴한 육군본부에서 박정희 소령을 본 순간 '아니었다' 하고 안도했다"고 했다. 김 전 총리는 "그때 굴러다니던 철모 하나를 주워 내가 손으로 소령 계급장을 그린 다음 박 소령에게 씌워주었다"고 했다. 그 후 20년 가까이 두 사람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