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사설] 2011년 6월 28일 화요일
4세 여아 외화벌이에 내모는 김정일 정권
어제 본보 A1면에 게재된 북한 어린이들의 외화벌이 공연 사진은 북한 어린이들이 처한 딱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경제 사정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북한은 4∼10세 어린이들을 중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노래하고 춤추는 외화벌이 일꾼으로 내몰고 있다. 동아일보 통신원이 지켜본 북한 나진극장의 공연에는 80여 명의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이 등장했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1인당 고작 5위안(약 850원)을 내고 공연을 관람하지만 당국이 다 가로채고 아이들에게 먹을 것이나 제대로 주는지 모르겠다.
10여 년 전에도 한국의 한 언론사 취재팀은 백두산 삼지연 학생소년궁전에서 눈물 없이는 보기 힘든 광경을 목도했다. 북한 어린이 150여 명이 남한 언론인들을 환영한다며 김일성 부자와 체제를 찬양하는 노래와 춤을 선보였다. 객석에서 올려다볼 때는 울긋불긋한 복장에 화장까지 한 아이들이 깜찍하고 귀여워 보였지만 공연 뒤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살펴보니 대부분 앙상하게 말라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아프리카 난민 자녀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다. 북한 아동들의 공연을 본 남쪽 사람들은 가슴이 아팠다. 아이들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선전 기계처럼 돌아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던 사진기자는 공연이 끌날 때까지 눈물을 줄줄 흘렸다. 아이들의 눈망울에는 힘든 연습 과정에서 겪었던 고통과, 멀리서 찾아와 내키지도 않는 환영공연을 하게 만든 남한 어른들에 대한 원망이 담겨 있는 듯했다.
북-중 국경 지역인 북한 원정리에서 나진까지는 48km에 불과하지만 구불구불 비포장 도로여서 자동차로 3시간이나 걸릴 만큼 관광 인프라가 한심했다. 북한 정권은 1박 2일에 800위안(약 13만6000원)짜리 싸구려 여행상품을 팔기 위해 유치원생까지 동원하는 아동 학대를 자행했다.
북한 어린이들은 만성적인 식량난의 최대 피해자다. 유엔아동기금(UNICEF)은 북한의 5세 미만 어린이 5명 가운데 1명이 영양 부족으로 저체중 상태라고 밝혔다. 북한은 굶주린 아이들을 혹독하게 훈련시켜 체제 선전과 외화벌이에 동원한다. 수천 명의 북한 어린이와 청소년이 매년 외국인 관광객에게 보여주는 아리랑 공연 때문에 혹사당한다. 나진극장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어린이들의 얼굴에서는 그 나이 또래의 천진난만한 표정이나 활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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