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서 가브리엘 대천사는 나자렛 마을 처녀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한다. 성령으로 잉태하여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낳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자연 질서와 충돌하는 이 놀라운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하며 당황하는 마리아에게 천사는 "하느님께서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말한다. 이에 마리아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며 "예"라고 답한다. 어떤 사람이 '인간은 무엇이며 하느님이 정말 존재하시는가?'하는 답을 얻으려 깊은 생각에 잠겨 시골길을 산책했다. 그러다 큰 나무 그늘 아래 누웠는데, 높고 큰 나무에 달려 있는 작은 도토리들과 시들고 가느다란 줄기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호박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만약 내가 하느님이라면 공평하게 저 큰 도토리나무에는 호박처럼 큰 열매가, 가늘고 긴 줄기에는 작은 열매들이 달리게 할 텐데…. 하느님은 계시지 않는 게 분명해"하고 생각하다 깜빡 잠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도토리 한 알이 그의 콧등 위에 떨어졌다. 잠에서 깨어난 그는 "하느님 맙소사! 저렇게 높은 나무 위에서 떨어진 게 도토리가 아니라 호박이었다면 내 코는 어떻게 됐을까?"하고 놀랐다. 그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 존재를 받아들인다. 불후의 명작 「레미제라블」 저자 빅토르 위고가 하느님을 믿게 된 유명한 일화다.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총체적 구원 계획은 한 인간의 자연적 혹은 초자연적인 크고 작은 신앙체험, 즉 하느님과 인격적 만남에서 시작된다. 이는 개인에게서 전체로 확장돼 간다. 하느님은 당신 구원사업에서 필요한 대상을 아무런 제약 없이 선택해 그들을 통해 당신이 의도하신 목적을 실행하신다.
빅토르 위고같이 일상생활을 통한 사소한 자연적 신앙체험도, 마리아의 초자연적 카리스마도 인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초대이다. 마리아는 하느님이 천사를 보내 그를 초대했을 때 "예"하고 응답했다. 이 "예"라는 절대적 신앙심으로 새로운 구세사가 시작된다. 마리아의 태중에서 '말씀', 곧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
그리고 주님의 구원 계획에 "이루어지소서", 곧 "예"하고 응답함으로써 마리아는 구세주의 어머니이며 신약 최초의 신앙인이 되셨다. 하느님 은총을 받기 전 나자렛 처녀 마리아와는 영적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하느님 뜻에 일치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작은 바늘 하나가 커다란 자석에 붙어 있는 동안에 그것은 이름만 바늘일 뿐이다. 바늘로서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강한 자석이 돼 쇠붙이를 끌어당긴다. 마리아의 일생은 '하느님 사랑'이라는 자석에 붙은 바늘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마리아의 변모는 그리스도인 본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하나의 이념이나 세계관이 아니라 생활 안에서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하느님의 초대, 곧 구원을 "예"하며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따라야 할 신앙 여정이 바로 마리아의 일생, 마리아의 길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 삶의 터전에서 하느님 사랑으로 초대받고 있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그 초대에 "예"하고 응답한다. 사랑은 인간의 것이 아닌 하느님 속성이므로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 또한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해야 한다.
예수님은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아들었다. 또 내개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 25,35-36)"며 우리가 이웃을 어떻게 사랑해야하는지를 가르쳐 주신다.
대림 마지막 주일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며 이 세상에서 천상의 삶을 미리 맛보게 하는 또 하나의 마리아가 돼야 한다. 우리 이웃에게 신앙의 모델이 돼야 한다. 정직하게 자신을 반성하는 겸손한 자세로 하느님을 향하고 곧 오실 우리 구세주를 "예"하며 기꺼이 맞이할 준비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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