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예수 성탄 대축일 -하느님이시며 참 빛이신 분

namsarang 2011. 12. 25. 22:36
[생활 속의 복음]                                                                                                                                                                                            

예수 성탄 대축일 -하느님이시며 참 빛이신 분

서광석 신부(전주교구 신풍본당 주임)

   오늘 복음은 "처음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은 하느님이시며 참 빛이신 분이다. 세상 모든 것이 참 빛이신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분은 당신을 믿고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는 내용이다.

 원조들의 잘못으로 하느님에게서 분리된 우리를 하느님과 다시 일치시키시고, 또 우리를 이어주실 분이 우리를 위해 태어나셨다. 그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 용맹한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이사 9,5-6 참조)이신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다.
 
 하느님께서 구약의 오랜 세월 동안 인간에게 당신 사랑을 어떻게 보여주셨는가를 우리는 성경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하느님 사랑에서 떨어져 나간 암울한 인간은 오직 육신의 안위만을 위해 세상에 재물과 명예를 쌓는 것에 목적을 둔 듯 살고 있었다.

 이처럼 우매한 인간을 향해 하느님은 끊임없이 사랑이신 당신을 나타내 보이셨다. 역사 속에서 일정한 장소ㆍ사물ㆍ사람을 통해서다. 즉 하늘의 천둥 번개와 바람, 땅의 나무와 흙, 물과 불, 혹은 예언자 등 자연적이거나 초자연적 방법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내셨다. 구약 전체 내용이 '그 사물', '그 사람', '그 사건'을 통해 구체적이고 점진적으로 현세에 집착하는 인간에게로 다가오시는 구원 역사이다.

 이 오랜 구약의 세월을 닫고 창조주께서 목덜미가 뻣뻣한 당신 백성(탈출 32,9)에게로 직접 오시기 위해 피조물 마리아에게 당신의 특별한 은총을 입게 하셨다. 이 여인 안에 스스로 작아지신 하느님, 곧 인간이 되신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이 놀라움을 "당신 자신을 비우셨다"(필립 2,7)고 했으며, 교부들은 "하느님이 우리의 작음을 취하셨다"고 일컬었다.

 성경은 평화의 왕, 아기 예수님 탄생으로 이제 그 분 왕국에서는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라"(이사 11,6-9)고 전하고 있다.

 우리 인간은 늑대ㆍ양ㆍ표범ㆍ독사ㆍ살모사ㆍ소ㆍ곰 등 동물 속성을 자신들 안에 지니고 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살면 서로가 서로에게 독사로, 양으로, 곰이나 사자 등으로 변할 수 있다.
 그러니 신앙 안에서 아집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자신을 벗고 이타적 사랑으로 전환된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돼야 한다. 즉 예수님 삶과 일치할 때 본능적인 우리의 나쁜 속성들은 하느님 사랑 안에서 순화된다. 신앙으로 평화로운 생활이 가능한 것이다.
 세상과 자신에게 고정된 시야는 하느님과 이웃에게로 향하게 되고, 아무리 보잘것없는 작은 사랑의 행위라도 그리스도 정신의 모든 것으로 승화된다. 그리고 그 사랑은 성령의 열매를 맺어 이웃을 구원으로 이끈다.
 또 하느님 은총으로 인간은 위대하고, 존엄하며 인격적 존재로 바뀐다. 소설 「부활」의 저자인 톨스토이가 "신앙 없는 인간의 생활은 짐승의 생활이다"고 한 말은 인간의 참다운 가치를 깨닫게 한다.
 
 이제 우리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좇으며 살다가 아무런 희망 없이 인생을 마감해야 하는 허무하고 비참한 존재가 아니다. 세상 어떤 부귀영화도 비교할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는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고 살다가 영원에 들어가게 됐다. 하느님 상속인이 된 것이다.

 임마누엘 예수님이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고 당신의 영적 현존을 약속하셨으니 우리 신앙생활은 그분과 함께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하느님 사랑에로 초대 받아야 할 이들이 많다. 신학적, 철학적 학문 이론은 인간 이성에 만족을 줄 수 있지만 가장 효과적인 복음 선포, 즉 하느님 구원에로의 초대 방법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