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석 신부(전주교구 신풍본당 주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하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나를 따라오너라…"는 말 한마디에 어부인 시몬과 안드레아, 야고보와 동생 요한은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른다. 오늘 복음은 회개와 소명, 추종에 관한 묵상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 말씀에서 '회개'란 우리 인생의 이러저러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을 의미한다. 이웃을 필요로 하는 삶에서 이웃을 위한 삶으로 옮겨가는 작은 죽음의 연속을 말한다. 이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벗어나 타인을 위해 이성적, 감성적 사고를 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복음을 믿어라"함은 예수님 자신이 곧 복음이므로 그분을 따르라는 의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인들에게는 소문을 듣고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현인들과 그들 제자 사이는 세상 이치에 대한 깨달음의 많고 적음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관계는 이들과는 큰 차이가 있다. 예수님은 세상의 현인들과 달리 제자들을 직접 찾으셨다. 제자 하나, 하나를 인격적으로 부르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과 제자는 전지전능과 무지라는 차이가 있다. 이것은 창조주와 피조물, 무한과 유한의 차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시지 않으면 우리가 그분 정체를 알고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부르심은 사랑이신 하느님이 당신의 피조물인 인간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구원의 신비이며 인격적 결합이다. 이런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는 모든 것을 버리는 추종이 가능하다. 제자들은 예수님 부르심에 응답해 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가족과 생계수단을 버리고 삶을 전환하는 회개를 체험한다. 산비둘기 한 쌍이 살고 있었다. 수비둘기는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부지런히 많은 식량을 집에 물어다 놓았다. 암비둘기는 그것을 말려 저장했다. 나중에 수비둘기가 보니 자신이 물어온 것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양이 비축돼 있었다. 수비둘기는 화를 내며 "얼마나 고생하며 물고 온 과일들인데 너 혼자만 먹어버렸어!"하고 암비둘기의 변명에 아랑곳없이 쪼아 죽였다. 며칠 후 비가 오자 물에 젖은 과일이 본래의 크기로 부풀어 올랐다. 진실을 깨달은 수비둘기는 "아내가 먹은 게 아닌데 내가 오해했구나!"하고 후회했다.
신앙의 여정에서 우리는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할지 타인을 위한 선택을 할지 결정하며 매번 새로운 기회를 만난다. 우리의 모든 사고와 행실의 중심에 타인을 세워놓고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영성적으로 성숙한 이상적 삶이다.
하지만 비둘기 부부의 예화처럼 우리는 쉽게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은 우리가 마음을 다해 자신을 내어 준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인간의 육체는 마음에 의해 좌우된다. 우리 마음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보고, 듣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반성한다. 그래서 마음과 마음은 깊고 긴 대화가 필요하다. 말이 많은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진정한 대화는 부족하다. 서로가 자신의 주장과 사고를 관철하려고만 애쓴다. 타인의 말과 생각, 감정을 소홀히 하는 수가 너무 많다.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의 삶이란 반드시 타인을 향한 사랑을 수반한다. 그리고 이 사랑은 우리 사고방식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다. 우리 판단을 관철하기에 앞서 만약에 예수님이라면 그 타인을 어떻게 사랑하실까 하고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요한 볼프강 괴테는 "사람의 행실은 각자가 자기 인간성을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인들이 익숙한 것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예수님을 따르는 행위 자체가 신앙의 거울이며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든다.
예수님의 "나를 따르라"는 사랑의 부르심은 지금도 우리 모두에게 계속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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