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7~1622. 프러시아 출생 및 스위스 선종. 카푸친 작은 형제회 사제. 순교
피델리스는 라틴어로 믿음, 성실, 충실함 등을 뜻합니다. 성인은 자신의 수도명답게 살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성인은 수도회에 입회하기 전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변호사로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았고 출세를 보장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권력에 편승하기보다 부당한 권력에 대항했고, 자신의 부와 명예를 쌓기보다 가난하고 억울한 이들을 대변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가 '가난한 이들의 변호사'로 불린 이유입니다.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만연한 법정에 깊은 회의를 느꼈고 기도와 묵상 중에 성소를 발견합니다. 성인은 이후 사제품을 받고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 입회했습니다.
그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과 정신에 감명받아 자신도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살기로 결심합니다. 뒤늦게 수도회에 들어와 다른 수도자들보다 나이도 많고 학력도 높았지만, 낮은 자리에서 궂은일을 마다치 않고 늘 겸손하게 머물렀습니다.
성인은 강론과 설교로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고 개종시켰습니다. 비결은 유려한 화술이 아닌 깊은 신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었습니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 전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맡기는 기도를 바쳤는데, 종종 탈혼 상태에 빠질 정도였습니다.
성인은 스위스로 파견돼 선교에 매진했습니다. 개신교와 이단에 맞서 가톨릭 가치와 정통 교리를 전했고 모범적 사제의 모습을 보이며 사람들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한없이 겸손했고 믿음이 깊었으며 자비로웠습니다.
덕분에 많은 이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했지만, 그만큼 그를 반대하는 세력의 방해도 극심해졌습니다. 무수한 협박에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는 1622년 강론 중에 괴한의 공격으로 살해당했습니다. 그는 1746년 교황 베네딕토 14세에 의해 시성됐습니다.
성녀 마리 유프라시아 펠티에(St. Mary Euphrasia Pelletier - 4월 24일)
1796~1868. 프랑스 출생 및 선종. 착한 목자 수녀회 설립
성녀는 독실한 신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의사인 아버지는 돈이 없는 이들을 기꺼이 치료해줬고 어머니 역시 늘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살았다. 덕분에 성녀도 어려서부터 봉사와 이웃 사랑 정신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다. 성녀는 성 요한 에우데우스가 설립한 애덕 성모 수녀회에 입회, 온전히 하느님을 따르는 삶을 살았다. 이후 사회적으로 냉대받고 버림받은 여성들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결심, 1835년 착한 목자 수녀회를 설립했다. 성녀는 상처받은 소녀와 여성들 치유와 구원을 위해 헌신했고, 수도회 발전에도 힘써 생전에 전 세계 100여 개가 넘는 수도회 분원을 세웠다. 1868년 선종한 성녀는 1940년 교회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됐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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