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그림

페르디낭 빅토르 외젠 들라크루아(Ferdinand Victor Eugène Delacroix)

namsarang 2012. 4. 22. 23:10



페르디낭 빅토르 외젠 들라크루아(Ferdinand Victor Eugène Delacroix)



Félix Nadar 1820-1910 portraits Eugène Delacroix.jpg

외젠 들라크루아


페르디낭 빅토르 외젠 들라크루아(Ferdinand Victor Eugène Delacroix, 1798년 4월 26일 ~ 1863년 8월 13일)는 프랑스 낭만주의의 중요한 화가이다. 19세기 낭만주의 예술의 최고 대표자로 손꼽힌다.


작품의 소재는 종교·신화·문학·역사에서부터 현실의 풍속·인물·풍경·정물 등 다양하다. 벽화·장식을 포함한 유화 외에 데생·수채화·파스텔 화·판화 등 방대한 작품을 제작하였다. 또한, 그는 예술에 관한 깊은 생각과 관찰을 일기·평론·편지 등에 많이 기록하여 남겼다. 그의 작품에는 자연을 구사하여 현실을 초월한 진실 속에 상상 세계에서의 인간의 모습과, 영웅적인 모습이 되려고 노력하는 인간의 표상이 담겨 있다.

들라크루아의 표현적인 붓놀림과 색의 광학적 효과에 대한 연구는 인상주의자들의 작업에 영향을 끼쳤고, 동시에 이국적 취미에 대한 열정은 상징주의 운동의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훌륭한 석판 인쇄공으로써 들라크루아는 윌리엄 셰익스피어, 스코틀랜드 작가인 월터 스코트, 독일 작가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등의 많은 작품들을 묘사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등이 있다.

그의 주요한 라이벌인 앵그르의 신고전주의적 완벽주의와는 대조적으로, 들라크루아는 피터르 파우얼 루번스의 예술과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화가들에게서 외곽선의 명료성과 세밀하게 본을 뜬 형태보다는 그들의 색과 운동에 대한 강조에서 영감을 얻었다. 극적이고 낭만적인 내용은 그의 성숙기의 주된 테마의 특징이 되었고, 그리스나 로마 예술을 고전적으로 모방하기보다 이국성을 찾아 북아프리카로 떠나게 되었다. 테오도르 제리코의 친구이면서 정신적인 상속자로서 들라크루아는 자주 난폭함을 보여주는 "장엄의 힘"에 대한 강한 동일시를 공유했던 바이런에게서도 영감을 얻었다.[4]

그러나 들라크루아는 감상성이나 과장에 젖어 들지 않았고, 그의 낭만주의는 개인주의자의 그것이었다. 



<알제리의 여인들>, 들라크루아 작품. 1798년 4월 26일 (프랑스) - 1863년 8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