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미술관 새 단장… ‘한국근대미술: 꿈과 시’ 전시회
기사입력 2012-05-29 03:00
100년전 ‘캔버스의 꿈’… ‘이인성 탄생 100주년’
(위)서울 덕수궁미술관의 ‘향(鄕) 이인성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 선보인 이인성의 ‘가을 어느 날’. 반라의 처녀 모습이 이국적이면서도 해바라기 꽃과 사과나무 등을 통해 조선의 향토색을 추구한 작품이다.원시적 자연의 건강성을 드러낸 점에서 고갱의 그림을 떠오르게 한다.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아래 왼쪽부터 차례대로)이인성 ‘자화상’, 덕수궁미술관의 상설전에 나온 이중섭 ‘부부’, 오지호 ‘남향집’.
《 서울 도심에 근대로의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운영하는 덕수궁미술관이 3개월 동안의 시설보수공사를 마친 뒤 ‘근대 중심의 미술관’을 표방하며 26일 새롭게 문을 연 것이다. 2층에서는 한국 근대미술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화가의 삶과 예술을 재조명한 ‘향(鄕) 이인성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3층에서는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등 근대 거장의 작품을 망라한 ‘한국근대미술: 꿈과 시’전이 동시에 개막했다. 》
1930년대 화단에서 이인성(1912∼1950)은 수채화와 유화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한 스타였다. 17세 때 조선미술전람회(선전·鮮展)에서 입선하고 1931년부터 수채화와 유화를 출품해 6회의 특선을 차지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 전시에선 새로 발굴한 16점을 포함한 75점의 회화와 드로잉, 200여 점의 자료로 내용을 알차게 채웠다. 개인 컬렉터가 주요 작품을 소장해 바깥나들이가 힘들었던 그림을 한데 모은 전시다. ‘한국근대미술’전도 근대를 테마로 미술과 시를 접목한 기획전이다. 예전보다 아늑해진 전시공간은 1900∼50년을 아우른 회화 조각 등 100여 점을 돋보이게 연출하며 조국을 빼앗긴 예술가들의 내면을 엿보게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정형민 관장은 “두 전시를 계기로 덕수궁미술관을 찾는 관객들이 언제라도 한국의 근대 명작을 접할 수 있는 전시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인성 전은 8월 26일까지, 한국근대미술전은 12월 2일까지. 무료. 02-2022-0600
○ 고향의 색채와 정서
대구에서 태어난 이인성 화백은 궁핍한 살림 탓에 보통학교만 졸업했으나 화가 서동진에게 수채화를 배우면서 출중한 기량을 꽃피우기 시작한다.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일본에 건너가 1931∼35년 태평양미술학교 야간부에서 그림을 공부했고 고향에 돌아와 청록의 보색 대비를 활용한 풍요로운 색채감각, 화면을 자르는 대담한 구도의 작품으로 이름을 떨쳤다. 1945년부터 이화여고 교사로 일했으나 6·25전쟁 당시 귀가하던 중 경찰과 사소한 시비 끝에 총기오발사고로 타계했다.
초기엔 대구 계산동 성당과 세련된 실내공간 등 근대의 상징물을 소재로 삼다가 정체성을 찾는 일에 눈을 돌린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해바라기와 옥수수, 사과나무가 어우러진 들판에 가슴을 드러낸 처녀와 상고머리 아이가 서 있는 ‘가을 어느 날’(1934년)은 이국적이면서도 꽃과 나무를 통해 조선의 향토색을 드러낸 대표작이다. 전시 제목의 ‘향’은 고향과 조국의 산야를 가리키는 동시에 딸 이름(애향)에서 보여주듯 가족도 의미한다. 박수진 학예연구사는 “그가 서구도 일본의 것도 아닌 우리 미술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향토색을 전시 화두로 삼았다”며 “대중이 가슴으로 만날 수 있는 그림들”이라고 소개했다.
○ 근대의 꿈과 좌절
이인성을 상징하는 향토색에 대해선 오늘날 양가적 시선이 교차한다. 조선의 색채와 정서로 민족적인 것을 표현했다는 긍정적 시각과 일제강점기 관전(官展)을 무대로 활동하면서 심사위원들이 주문한 향토적 서정주의에 순응한 작업이란 비판이 공존하는 것이다. 근대를 해석하는 엇갈린 평가처럼 일제강점기부터 전쟁까지 격랑의 시기를 헤쳐온 예술가의 작업엔 꿈과 좌절이라는 이중적 감정이 배어 있다.
근대기 대표작가인 안중식 고희동 이상범 이종우 주경 등의 대표작을 조명한 ‘한국근대미술’전에선 그들의 힘겨운 희망과 절망을 만날 수 있다. 햇빛 쏟아지는 집을 배경으로 딸의 모습을 그린 오지호의 ‘남향집’(1939년)에선 건강한 일상의 풍경이, 우울한 표정의 천재시인 이상을 그린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1935년)에선 ‘누구도 절대로 행복할 수 없었다’(이상의 아내 변동림)는 말처럼 근대인의 고뇌가 다가온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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