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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컵 좌파’와 ‘콩국수’가 뜨는 세상

namsarang 2012. 4. 23. 23:56

[황호택 칼럼]

‘B컵 좌파’와 ‘콩국수’가 뜨는 세상

기사입력 2012-04-23 03:00:00



황호택 논설실장

군사평론가 로버타 월스테터는 저서 ‘진주만: 경고와 결정’에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실체가 항상 명백하게 밝혀지는 법이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는 의미가 모호하고 불분명했다”라고 썼다. 미국은 일본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여러 갈래의 정보를 입수했지만 그 대상은 일본에서 멀리 떨어진 하와이의 진주만이 아니라 필리핀일 것이라고 오판했다. 역사학자 논평가 문학가들은 사건의 결말이 나고 나서야 의미를 추출하는 데 능하다. 이른바 ‘뒤늦은 깨달음(hindsight)’이다. 

김용민이 외설 막말로 추락하기 전 민주통합당에는 나꼼수의 도움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야 너희들 그만둬. 저질 외설 막말에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고 있어”라고 따끔하게 질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작가 공지영은 김용민이 민주당에 패배를 안겨준 중요한 요인으로 드러난 직후 “민주당이 김용민을 놔둔 것은 치명적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트윗을 올렸다. “김용민을 사위 삼고 싶다”던 공지영이 ‘뒤늦은 깨달음’을 얻은 것인가. 공지영은 작년 11월 20일 대전의 나꼼수 집회장에서 “큰일, 의미 있는 일들을 하는 나꼼수를 도와주고 싶다. 기존의 위선적인 사람들을 까놓는 것이 너무 통쾌하다”며 “딱 제 과예요”라고 ‘강추’했다. 그는 11월 30일 서울 여의도 나꼼수 집회에서 무대 위에 올라가 김어준을 “저보다 가슴이 큰 B컵 좌파”라고 소개했다. 

공지영 조국 이외수 ‘나꼼수 편애’ 


나꼼수 멤버들과 공지영이 경남 양산 문재인의 집을 찾았을 때 정봉주는 빠졌다. 정봉주는 공지영에게 “왜 안 왔느냐고 묻거든 ‘같은 대선주자끼리 쓸데없는 기싸움 하고 싶지 않았다’라고 전해줘”라는 문자를 보냈다. 문재인이 나꼼수와 더불어 부산에서 거리 행진을 하고, 외설 막말 파동에도 김용민의 사퇴를 말렸다는 전후 사정이 비로소 이해가 갔다.

공지영은 “나꼼수 책들 때문에 내 책이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나꼼수의 책들이 즐비하다. 김어준의 책은 91쇄, 정봉주의 책은 11쇄, 주진우의 책은 10쇄, 김용민의 책은 7쇄를 했다. 출판 불황에 대박 행진이다. “콘돌리자 라이스를 ××해서 죽이자”고 떠드는 자의 책이 불티나는 독서 풍토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공지영의 작품 ‘즐거운 나의 집’은 결혼 세 번하고 이혼 세 번해 성이 다른 자녀 셋을 키우는 이야기를 다룬 자전적(自傳的) 소설이다. 심리묘사가 탁월한 데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궁금해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실제 사람들을 모델로 한 것이지만 허구에 의해 펼쳐진 것”이라는 주석을 달았다. 현실을 상상력으로 조리해 가공된 현실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소설에서는 OK다. 그러나 현실세계의 소식을 미디어를 통해 전할 때는 사실의 정확성(factual accuracy)을 존중해야 한다. 

요즘 좌파 매체 중에서는 ‘콩국수’(공지영, 조국, 이외수)가 강세다. 공지영의 트위터는 팔로어 40만 명을 거느린 대형 미디어다. 공 씨는 총선일인 4월 11일 트위터에 “타워팰리스의 투표율 78%”라는 허위 글을 리트윗해 놓고 논란이 일자 “트위터의 생명인 빠른 속보의 특성상 오보가 일어날 가능성은 누구에게든 늘 존재한다”고 변명했다. 사실 확인을 위한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친 적도 없고, 꼼꼼한 시어머니 같은 게이트 키퍼(문지기)도 없는 풋내기 기자가 특종욕에 불타 오보를 남발하는 것과 같다. 

나꼼수의 요설에 이의를 제기했다가는 ‘꼴통’으로 치부될 것 같은 사회분위기를 만드는 데 콩국수가 일조했다. 나꼼수와 콩국수는 서로 끌어주고 밀어줬다. 김용민은 저서 ‘조국 현상을 말한다’에서 조국을 2017년 대선 후보로 추대했다. 조국은 국회의원 후보 김용민의 후원회장을 했다. 이외수는 비키니 차림의 ‘뽀순이’를 안고 정봉주를 지원하는 비키니 시위에 동참했다. 나꼼수 팬들은 이외수를 ‘형님’으로 불렀다. 공지영은 정봉주 책 표지 띠지에 추천사를 써줬다. 

천박한 막말문화 제동 걸어야

서울의 동북3구(강북 도봉 노원)에 나온 야권연대 후보 중에 김용민만 패배했다. 노원갑 선거구에 거주하는 한 교수는 “스스로 ‘정봉주의 ×’이라 칭하는 친구가 국회의원이 되면 ×의 ×이 되겠기에 지인들에게 ‘×’을 찍으면 안 됩니다”라는 카카오톡을 보냈다고 전했다. 총선 결과를 보더라도 ‘×’ ‘××’나 ‘18’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자들 때문에 기죽을 이유가 없었다. 

가슴만 큰 ‘B컵 좌파’들의 천박한 하위(下位)문화가 건전한 양식(良識)을 밀어내는 현상보다 더 서글픈 것이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와 서울대 교수라는 최고의 지식인 그룹이 욕쟁이들의 저급한 구라에 박수를 쳤다. 뜬구름 같은 현상을 만들어놓고 거들먹거린 나꼼수에 놀아난 것이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