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

파도 - 오세영

namsarang 2012. 5. 26. 19:15

 

 

 

파 도              

 

 

파도는

간단없이 밀려드는 파도는
해안에 부딪혀 스러짐이 좋은 것이다.
아무 미련 없이
산산히 무너져 제자리로 돌아가는
최후가 좋은 것이다.
파도는
해안에 부딪혀 흰 포말로 돌아감이 좋은 것이다.
그를 위해 소중히 지켜온
자신의 지닌 모든 것들을 후회 없이 갖다 바치는
그 최선이 좋은 것이다.
파도는
해안에 부딪혀 고고하게 부르짖는 외침이 좋은
것이다.
오랜 세월 가슴에 품었던 한마디 말을
확실히 고백할 수 있는 그 결단의 순간이 좋은
것이다.
아, 간단없이 밀려드는 파도는
거친 대양을 넘어서, 사나운 해협을 넘어서
드디어
해안에 도달하는 그 행적이 좋은 것이다.
스러져 수평으로 돌아가는
그 한생이 좋은 것이다.

 

                                                                   ―오세영(1942~ )

 

 

                           

파도의 물리적 현상이 궁금한 적이 있었다. 지구의 기우뚱거림이라고 엉뚱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파도 소리를 듣고 먹고 입고 자란 사람에게 뭐 파도의 현상이 그리 궁금하랴 싶지만 그것은 여전히 신비다. 여기 파도의 한 해석이 제시되었으니 그 소멸이 즐거워 그러할 것이라는, 게다가 저, 사나운 해협과 대양을 넘어서 온 장대한 말씀이라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우리 정신도 생애도 파도타기를 꿈꾸어야 하지 않겠나! 소멸의 아름다움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