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을 향한 화해와 일치의 기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라고 하신다. 형제가 죄를 지으면 일곱 번까지 용서해 줘야 하느냐는 베드로의 질문에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대답하신 내용이다.
일본 제국 36년 동안의 강제 점령기를 마치고 신생 정부를 구성해 새 출발을 하던 우리 민족에게 1950년 6월 25일 동족상쟁(同族相爭)의 광풍이 일어났다. 강산은 피로 물들었고, 가옥ㆍ농토ㆍ공장 등은 파괴됐다. 민간인 사상자와 행방불명자는 수백 만에 달했다.
3년 동안 이어진 이 동족 간 혈전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양대 이데올로기에 얽힌 세계의 전쟁이었다. 한국교회는 1965년부터 매년 6월 25일 전후한 주일을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로 정했다가, 1992년부터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명칭을 바꿔 미사와 기도를 계속하고 있다. 그리스의 한 철학자에게 제자가 있었다. 스승은 "3년 동안 누군가가 당신을 모욕하면 분노하지 말고 그들에게 돈을 지불하라"고 제자에게 명했다. 그 시험 기간이 끝났을 때 스승은 제자에게 "이제 아테네로 가서 지혜를 배워도 좋다"고 말했다.
제자가 아테네에 도착했을 때 어떤 현자가 성문 앞에 앉아서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모욕하고 있었다. 현자가 철학자의 제자를 모욕했을 때 그 제자는 크게 웃었다. 현자가 "당신을 모욕하는데 화를 내지 않고 왜 웃습니까?"하고 물었다. 제자는 "3년 동안 나를 모욕하는 이들에게 돈을 지불했는데, 당신은 저에게 지금 공짜로 그 일을 해주니 화낼 이유가 없지요"하고 답했다.
그러자 현자가 말했다. "아테네 도시로 들어가십시오. 그 도시는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불가의 "싸워서 이기면 원수가 많아지고, 패하면 누워도 편치 않다. 이기고 지는 이 두 가지를 함께 버리면 자나 깨나 고요한 즐거움이 있다"는 가르침처럼 욕망이 적을수록 평화는 쉽게 이뤄진다. 어떠한 원한도 원한으로 갚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총과 칼 등의 무기를 사용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원한을 용서하는 것이 온갖 악을 방지하는 지혜로운 방법이다. 전쟁은 인간이 만든 제도에 의해서, 사회를 구성하는 방법 때문에 일어난다. 이념과 외세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발발된 6ㆍ25 동란은 한민족에게 엄청난 비극을 가져왔고, 우리 민족 중에 이 동족상쟁의 비극으로 희생자를 내지 않았던 가족은 거의 없었다. 희생과 고통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고, 한반도의 이 분단 상태는 반영구화 또는 영구화될 가능성이 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이루고자 하는 우리 노력이 보잘것없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60여 년 동안의 첨예한 대립과 상호불신의 벽은 우리 민족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증오는 절대로 증오로써 잠재울 수 없다. 그것은 사랑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교회가 6월 25일을 전후한 주일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정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서로 간에 엄청난 고통에도 사랑으로 용서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기도하고 끝없이 용서하라는 것이 오늘 복음 내용이기도 하다.
교회 성인들은 그리스 철학자와 그 제자의 예화를 자주 인용한다. 어떤 모욕과 고통도 사랑으로 극복하고 들어간 그 '아테네 도시'를 두고 "이것이 우리 조상이 많은 시련 속에서도 기뻐하며 천상 도시로 들어갔던 하느님의 문입니다"라고 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통일이며, 통일돼야 한다는 말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우리가 통일돼야 함은 같은 민족과 같은 조상에게서 피와 땅을 물려받았고, 또한 우리 후손들이 이 땅에서 영구히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상체는 영양실조로 말라있고, 하체는 비만인 기형적인 나라를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준다면 엄청난 비극일 것이다.
이러한 비극을 생각하면 우리는 기도하고 용서하며 일치를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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