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예수님의 권한을 받은 제자들

namsarang 2012. 7. 15. 12:32

[생활 속의 복음]

연중 제15주일

예수님의 권한을 받은 제자들

          서광석 신부

    (전주교구 신풍본당 주임)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악령을 제어하는 권한을 주시며 둘씩 짝지어 파견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고 하셨다. 먹을 것이나 자루, 돈도 지니지 말라고 하셨다. 신발은 신고 있는 것을 그대로 신고 속옷은 두 벌씩 껴입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열두 제자는 나가서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가르치며, 마귀를 쫓아내고 수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병을 고쳐 주었다.

 "백 리 길을 가야 할 사람은 세끼 밥만을 준비하고, 만 리 길을 갈 사람은 석 달 양식을 마련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세상의 상식이다. 그런데 열두 제자는 지닌 것 없이 둘씩 짝지어 파견됐다.

 이는 그들이 완전하고 강해서가 아니다.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두려움 없이 복음을 전하며, 그리스도의 행적을 모방할 수 있어서도 아니다. 열두 제자는 하나하나 자신의 개별성을 가진 인격체로서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 구원 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베드로는 베드로로, 야고보는 야고보로서 스스로 진리를 밝히는 존재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달이 되고 싶은 박이 있었다. 초가지붕 위에 박은 강낭콩만 했다가 점점 커져 달걀만 해지고, 마침내 달만 해졌다. 그리고 밤하늘에 둥근 보름달이 떠올랐다. 박이 달에게 "달님, 제 모습이 달님을 닮았지요?"하고 물었다. 달은 "그렇구나"하고 답했다. 그러자 박이 "그런데 왜 저는 빛나지 않나요?"하고 말하며 슬퍼했다. 달이 부드럽게 말했다.

 "한 소녀가 있었단다. 소녀는 노래 부르는 사람을 보고 성악가가 되려 했지. 그림 잘 그리는 이를 보고 화가가 되려 했어. 자라서는 동화 쓰는 사람이 되었단다."

 박이 "왜 그랬을까요"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달은 "사람마다 재능이 다르단다"하고 말했다. 박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얼마 후 자신이 할 일을 알아냈고, 남의 흉내를 내려고 한 것이 잘못이었음을 깨달았다. 박이 "단단한 그릇이 되겠어요"하고 말했다. 달은 "내가 못하는 좋은 일을 너는 하겠구나"하고 말하며 웃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만남은 저마다 독특하므로, 각자 그분과 고유한 신앙관계를 맺는다. 그러므로 교리의 가르침을 지키고 따르는 신앙심 외에도 개인 자율성과 고유성이 믿음에 수반돼야 하는 것이 창조질서에도 부합한다. 하느님을 지향하는 사람은 독립된 인격체로서 공동체 구성원이다. 유니폼처럼 획일화돼가는 인간적 가치평가나 사랑이나 미덕 등 그 어떤 구실로도 속박될 수 없다. 세상의 어느 피조물보다 우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신앙의 삶을 사는 동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지혜를 구해야 한다. 그 사랑은 인류구원이며 영원한 생명이다. 지혜는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하고 적합한 수단이다. 지혜롭지 못한 마음에서 행하는 사랑은 오히려 다른 이에게 해로운 결과를 낳는다. 마찬가지로 세상 것들은 우리가 궁극적 목적을 향해 가는 데 유용한 수단에 불과하다.

 재력이나 죽은 자들의 개념, 견해에 바탕을 둔 지식으로 가득 차서 자신을 '모르는 것이 없는 강자'로 확신하는 사람은 타인의 말을 듣지 않는다. 다른 이들과 생각도 나누지도 못한다.

 하지만 돌아온 탕자(루가 15,11-32)가 물려받은 재산은 한낱 형식적 상속에 불과하다. 참된 유산은 아들로서 인정받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상속된 재물은 언젠가 사라지지만, 부자(父子) 관계는 없어지지 않는다.

 요즘은 큐피드의 화살 대신 금전의 미사일을 쏴야 결혼이 쉽게 성사된다고 한다. 재물은 밑 없는 깊은 바닷물 속 귀신과 같다. 인간은 명예도 양심도 진리도 모두 집어삼키는 재물을 구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온갖 폐기물과 이름 모를 독약으로 오염된 대지와 바다는 미치도록 몸살을 앓는다. 인간은 병들어가는 땅을 밟고, 그 산출물을 먹는다. 인간이 이기적으로 변하고 이성을 잃고 괴물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수님을 굳게 믿고 지팡이만 지닌 채 파견된 열두 제자는 넘치는 은총으로 부족함 없이 사명을 완수했다. 방이 수십 개라도 누워 자는 곳은 하나뿐이다. 땅이 아무리 많아도 죽어 묻힐 곳은 반 평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세상 재물의 상속자가 아닌 하느님의 상속자가 돼야 한다는 것을 유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