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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오른팔 하나로 쓴 드라마… 4년 전 패배 갚았다

namsarang 2012. 8. 1. 11:38

[런던 2012] [유도]  

김재범, 오른팔 하나로 쓴 드라마… 4년 전 패배 갚았다

   런던=장민석 기자     

 

입력 : 2012.08.01 03:09

베이징 결승 상대 또 만나 압도적 기술로 깨끗이 설욕
세계선수권서 올림픽까지… 男유도 두번째 그랜드 슬래머

4년을 기다린 '한풀이'였다.

김재범(27·한국마사회)이 1일(한국 시각) 영국 런던의 엑셀 런던 노스아레나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유도 남자 81㎏급 결승전에서 독일의 올레 비쇼프에 유효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땄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비쇼프에 지면서 2위를 했던 김재범은 4년 만의 '리턴 매치'에서 화끈하게 설욕했다.

이로써 김재범은 2010·2011 세계선수권과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 5회 우승에 이어 런던올림픽 금메달까지 따내며 올림픽·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아시아선수권을 석권했다. 이원희(현 용인대 교수)에 이어 한국 남자 유도의 두 번째 '그랜드 슬래머'가 됐다.

4년 만의 복수

김재범은 4년 전까지만 해도 "축구에서 골 결정력이 없으면 승부차기로 이기면 된다"고 말할 정도로 '체력전'에 의존했던 선수였다. 베이징올림픽 때 60㎏급의 최민호가 다섯 판을 모두 한판으로 이기며 단 7분여를 쓴 데 비해 김재범은 당시 다섯 경기를 하는 동안 연장전 두 번을 포함, 32분을 뛰어야 했다. 결국 결승에서 체력의 한계에 부딪혀 종료 1분 30초를 남기고 비쇼프에 통한의 유효를 뺏겼다. 대회 직전 간 수치가 기준치 이상 나올 정도로 극심한 피로감을 느꼈던 그에겐 반격할 힘이 남아있지 못했다. 그는 "너무 힘들어 미칠 것 같았다. 그냥 빨리 경기가 끝나길 바랐다"라고 당시를 회상한다.

김재범(파란 도복)이 1일 영국 런던의 엑셀 런던 노스아레나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유도 남자 81㎏급 결승전에서 독일의 올레 비쇼프에 유효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땄다. 사진은 결승전에서 적극적인 공격을 펼치고 있는 김재범의 모습. /로이터 뉴시스

4년이 흘렀다. 김재범의 체력은 여전히 발군이었다. 상대에 점수를 허용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공격을 펼치는 노련함이 배가됐다. 김재범은 32강전에서 야크효 이마모프(우즈베키스탄)를 맞아 경기 종료 1분8초를 남기고 밭다리걸기로 유효를 따내 첫 승을 거뒀다. 이어 열린 16강전에서 헝가리의 라슬로 초크나이에 지도 2개를 빼앗아 유효승을 거뒀다. 8강전에선 에마누엘 루센티(아르헨티나)에 지도를 세 개나 이끌어내며 절반승을 따냈다.

김재범은 4강전에서 러시아의 이반 니폰토프를 업어치기 절반승으로 꺾었다. 업어치기는 안다리걸기, 허벅다리 걸기 등 다리기술을 주로 썼던 김재범이 베이징올림픽 이후 장착한 신무기였다. 그는 결승에서 4년 전 올림픽에서 자신을 은메달에 머무르게 했던 비쇼프와 재회했다.

이번엔 김재범이 더 강했다. 초반부터 활발한 공격을 펼친 김재범은 경기 시작 48초 만에 안다리 공격으로 유효를 뺏어냈다. 1분여 뒤엔 안다리를 공략해 유효 하나를 추가했다. 4강전서 연장 혈투를 벌였던 비쇼프는 김재범의 공격을 감당해내지 못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경기 후반부에도 김재범은 공세를 멈추지 않으며 주도권을 놓치지 않았다. 시계가 멈추자 김재범은 두 손을 하늘로 높이 들어올리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한 팔로 따낸 금메달

경기가 끝나고 김재범은 극한의 승부를 버텨낸 자신의 왼쪽 어깨를 어루만졌다. 2010년 1월 수원 월드마스터스 우승을 시작으로 7개 국제 대회에서 연승행진을 벌였고 2010·2011년 세계선수권을 제패하는 등 승승장구하던 그는 작년 12월 KRA 코리아월드컵 도중 왼쪽 어깨를 다쳤다. 어깨를 감싸는 회전근이 찢어진 큰 부상이었다.

재활을 통해 꾸준히 회복했지만 그는 습관성 탈구 탓에 한동안 '오른팔로만 유도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서동원 한국선수단 주치의(바른세상병원 대표원장)는 "왼쪽 어깨의 회전근이 부분적으로 여러 군데 끊어져 있고 왼쪽 팔꿈치 인대에도 손상이 있다. 왼팔을 움직이는 것이 신기할 정도"라며 "왼쪽 무릎 인대도 상태가 좋지 않다. 수술도 미룬 채 '종합 병동'인 몸을 이끌고 따낸 투혼의 금메달"이라고 말했다.

특유의 유연함도 우승의 원동력이 됐다. 김재범은 앉아서 윗몸을 앞으로 굽히는 체육과학연구원의 신체 유연성 측정에서 손이 발끝을 넘어 25.5㎝ 앞으로 나왔다. 25~29세 남자의 평균치(13.3㎝)를 크게 웃도는 동시에 유도 선수로서도 뛰어난 유연성이다. 체육과학연구원 김영수 박사는 "김재범은 물 흐르는 듯한 유연한 움직임으로 상대가 공격할 틈을 좀처럼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재범은 이날 결승까지 다섯 경기를 치르는 동안 상대에 유효 하나도 허용하지 않는 무결점 방어를 선보였다.

세계 유도의 별이 되다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김재범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의 권유로 처음 도복을 입었다.

용인대 2학년이던 2004년 66㎏급에서 73㎏급으로 체급을 올린 그는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원희의 연습 파트너로 실력을 쌓았다. 그해 국내대회에서 이원희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차세대 스타로 자리 잡았다.

73㎏급에서 이원희·왕기춘과 삼각 구도를 형성하던 김재범은 베이징올림픽을 10개월 앞두고 체중 감량에 부담을 느끼고 81㎏급으로 체급을 올렸다. 그러자 이원희·왕기춘을 피해 체급을 올렸다는 비아냥이 나왔다. 올림픽 금메달로 진가를 보여주려고 했던 그는 베이징 은메달에 만족하지 않고 지난 4년간 굵은 땀방울로 도복을 적셨다. 그 노력은 그랜드 슬램이란 빛나는 결과로 보상받았다. 김재범은 "4년 전엔 죽기 살기로 했다. 이번엔 죽기로 했다"고 감격스러워했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소름 돋게 해주겠다, 닭살 돋게 해주겠다'고 말했던 김재범. 그의 약속은 금빛으로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