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연중 31주일 - 마음·정신·힘 다해 사랑해야

namsarang 2012. 11. 4. 22:46

[생활속의 복음]

 

연중 31주일 - 마음·정신·힘 다해 사랑해야


 

▲ 곽승룡 신부(대전가톨릭대 신학원장)


  매사에 질문을 자주 하는 사람이 있다. 옛말에도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 아는 길도 물어가라"고 했듯이 오늘 복음에서 율법학자는 예수님께 모든 계명 가운데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이냐고 질문한다.

 주님께서는 첫째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 한다", 둘째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며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고 말씀하신다. 복음은 성실한 삶의 첫 자리에 '하느님의 사랑'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전한다.

 질문은 기본에 충실하고, 생활을 건강하게 하는 데 필요하다. 그리고 본질이 무엇인가 따져묻는 데 유익하다. 정직하고 성실한 공무원은 주민에게 무엇이 불편하고, 무엇이 필요한가를 계속 묻는다. 교사도 수업을 준비하면서 학생들 입장에서 예상되는 요점을 질문형식으로 준비한다. 자동차 정비사도 자동차뿐만 아니라 운전자에게 문제점을 물으며 정비한다.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초기 그리스도교 순교자들은 공경을 받았다. 그들 죽음이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고 말씀하신 주님 사랑의 표징이기 때문이다. 2세기 리옹의 성 이레네오는 구원을 위해서는 많은 인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많이 사랑하는 것만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시리아의 수도자 치로 테오도레토는 엄격한 수도생활을 기록한 책에서 "오직 사랑만이 모든 삶을 정당화하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회고했다.

 체코의 어느 대중가요 가사는 "내가 너를 사랑하듯이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당신은 이미 하늘의 천사처럼 성인이 될 것"이라고 노래한다. 윤리학자들은 하느님 사랑을 남녀의 사랑에 비유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인간 감정을 노래하는 것이 과연 늘 부정적일까? 오히려 인간 사랑 안에서 하느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아들이 칭찬을 받거나 성공할 때 어머니는 행복을 느낀다. 아들과 어머니 사랑이 함께 작용하는 것은 아들과 어머니가 한 몸인 까닭이다.

 이 같은 영적 일치는 구약성경에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나타난다. 주님의 영광이 히브리인의 승리이기에 그들은 매일 "우리 주님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 그들은 하느님의 심오한 사랑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같이 우리가 하느님을 가슴 깊이 느끼고 사랑한다면, 하느님의 영광과 성공은 우리 기쁨처럼 느껴질 것이다.

 우정은 친구가 도움이 필요할 때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으시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우정을 요청하신다. 우리는 땅 위에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는데 협력하면서 그분께 사랑을 보여줘야 한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랑의 사명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분이 부르실 때 이사야의 말처럼 "예!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주십시오"(이사 6,8)하고 응답하는 자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오늘 복음에서 마음과 목숨 그리고 정신과 힘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주님 말씀은 무엇을 뜻할까? 주님께 질문하는 율법학자는 사랑의 기본에 충실한 사람이다. 주님 말씀을 즉시 알아듣고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보다 낫습니다."

 주님의 표현,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하는 사랑"과 율법학자의 고백, "마음, 생각,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온 존재를 다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다. 과연 한국교회는 전 존재를 다 바쳐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가? 혹시 주님께서 오늘의 교회가 자신만을 사랑하지 않는가를 질문하는 듯하다.

 한국교회 일반이 교계뿐 아니라 사회에 우려를 끼치는 것도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기보다는 교세확장, 축복획득이라는 표층종교의 자기 사랑의 모습을 드러내는 이유다. 내가 잘 되려고 믿는 종교에 머무는 것이 오늘날 종교의 장애가 되고 있다.

 이제 교회는 표층종교에서 벗어나야 한다. 믿음으로 지금의 나를 극복하고 참된 나를 찾아 하느님과 이웃을 참으로 사랑하는 심층종교로 나아가야 한다. "대형화, 세력화가 한국교회를 망치는 가장 큰 문제점"이라는 비교종교 신학자 오강남 교수의 지적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