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사순 제3주일이다. 주님께서는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루카 13,5)하고 말씀하시며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비유를 들려주신다.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는 잘라 버리겠다는 것이 포도원 주인 뜻이다.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는 아까운 땅만 차지하고, 그러면 땅만 버리고 못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포도원 주인은 포도원지기가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루카 13,8)하고 청한 탄원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땅은 하느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 맨 처음으로 하늘과 더불어 창조하신 것이다(창세 1,1). 만물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창조됐으며, 하늘은 만물을 덮고 땅은 만물을 실어 나고 자라고 열매 맺도록 하셨다. 땅은 곧 천지 만물이 생장(生長)하는 토대요 발판이다. 또 하느님께서는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며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창세 1,28)하고 명령하셨다.
그뿐만 아니라 하느님께 죄를 지은 인류를 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죄 많은 인류를 위해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으리라.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하시면서 땅을 인간 생명의 터전으로 넘겨주신다.
땅은 하느님께서 죄 많은 인류에게 베푸신 자비와 축복의 선물이다. 사람은 하느님으로부터 거저 얻어먹을 수 있었던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지만, 오히려 인류에게 일하게 하심으로써 그 대가로 기꺼이 풍부하게 누리도록 마련해 주셨다. 이 때문에 바오로 사도도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거듭 지시하였습니다. 그런데 듣자 하니, 여러분 가운데에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일은 하지 않고 남의 일에 참견만 하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시하고 권고합니다.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2테살 3,10-12)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사실 빌라도에게 살해당한 갈릴래아 사람들이나 실로암 탑에 깔려 죽은 사람들도 모두 억울한 이들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들이 다른 이들보다 죄를 많이 지어 그렇게 됐을 것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니다'하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면서 오히려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하신다.
그들은 일상에서 고단한 삶을 살던 사람들이었는데 어찌하여 회개하지 않았을까? 무엇을 회개하지 않았을까? 놀랍게도 우리는 그것을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비유에서 찾을 수 있다. 무화과나무는 나름대로 열심히 자라고 잎을 무성하게 싹 틔웠지만 결국 포도원 주인 뜻에는 부합하지 못한 채 아까운 땅만 차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무화과나무의 다름 아닐지도 모르겠다. 일상에서 진실하게 일해 일용할 양식으로 살아가지 않고, 남에게 참견만 하면서 마치 자신이 땀 흘려 맺힌 열매인 것처럼 살아간다면, 결국 가로챈 열매는 자신이 땀 흘리지 않고 남에게서 빼앗은 것이 아니겠는가?
신앙생활은 하느님을 향해 머리를 두고(회두), 마음을 하느님께 돌리며(회심), 사언행위를 뉘우쳐 마음을 고쳐먹는(회개) 행위다. 모든 인간적 탐욕을 경계하고(루카 12,15) 하느님 안에서 진실하게 사는 것이다.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루카 4,4) 하느님 말씀으로 살아간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부와 학벌과 명예와 권력을 섬긴다. 이것들은 생명이 다하는 날 결국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 것들이다. 예수께서도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사순시기인 지금 우리는 어떤 삶을 사는가.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처럼 쓸데없이 땅만 차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주님 뜻을 거역하면서도 스스로 그것을 주님 뜻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나. 땅을 무시하고, 땀 흘리며 땅을 일구는 일꾼을 무시하며, 가난한 이들을 모른 채 하고, 가진 자들과 착취하는 자들을 애써 두둔하지는 않는가. 또 주님께서 용서하고 자비롭게 돌봐주고 계시는지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탐욕만을 채우려 드는 것은 아닌지.
하늘과 땅과 만물과 이웃이 모두 나를 위해 보내주신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의 선물임을 알지 못하고, 한낱 자신의 이기적 욕심을 채우는 도구로 이용하려는 것은 아닌가. 또 공동선(1코르 12,7)을 지향하고 세상 정의와 불의, 평화와 불목 사이에서 무엇을 택할 것인지 깊이 따져보지 않고 마음대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진실로 주님께 속한 사람인지 아닌지 판가름할 수 있는 것은 곧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느냐의 여부에 달려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주님의 땅만 차지하게 돼 무화과나무처럼 잘려나가 멸망할 수도 있다.
 | ▲ 신대원 신부 (안동교회사연구소 소장)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