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사순 제2주일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신다.
복음사가는 예수님에 관해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그리고 두 사람이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루카 9,29-30)하고 비교적 자세하게 보도한다.
제자들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 스승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보고 또 그분과 함께 서 있는 두 사람도 보았다. 그 두 사람이 예수님에게서 떠나려고 할 때,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루카 9,33)하고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씀드린다. 그는 지금 주님 뜻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개인적 주장을 마치 충성맹세라도 하듯 늘어놓고 있다.
옛말에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는 말이 있다. 두 사람이 같은 침상에 누워 자면서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이다. 서로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으면서도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는 말이다. 사실 사람은 살아가는 데 있어 처지가 서로 비슷하거나 같을 수 있지만, 각기 품고 있는 사정을 살펴보면 얼마든지 생각과 염원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이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면 자기 생각이 타인과 다르더라도 때와 장소와 대상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지금 베드로의 생각은 어떠한가? 그는 자신의 입장만 생각할 뿐, 주변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는 이제 막 스승이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첫걸음을 뗀 초보 수행자가 아니던가. 하지만 그는 스승께서 걸어가실 길을 단숨에 가로막아버리려는 망나니짓을 하고 있다. 스승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 것은 장차 일어날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이고, 보여주신 영광스런 모습은 그 일이 다 이뤄지고 난 후의 모습이 아니던가.
베드로와 제자들은 스승인 주님 뜻을 완전히 곡해하고 왜곡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제자로 나선 마당임에도 한순간에 눈이 어두워져 자신의 안위와 편익만을 좇아 스승의 뜻을 자신들 임의로 해석하고 말았다.
물론 제자들은 스승을 따라다니느라 고달팠을 것이다. 원래 스승을 모시고 산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달프다. 그럼에도 제자는 스승의 일거수일투족을 배우고 따라야 한다. 스승께서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는 것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것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 제자로서 감당해야만 할 몫이다.
스승은 제자들 뜻과 상관없이 당신의 길을 걸어가신다. 오히려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을 따르겠다고 나선 제자들이 스승의 뜻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말을 하고, 다른 길을 선택하겠다고 한다면 그들은 제자 됨을 포기하는 것이 되고 만다. 제자가 스승을 모시는 것은 마땅한 처사요 도리다. 모신다는 것은 '섬긴다'는 뜻이다. 앞에서는 아첨하고, 뒤에서는 배반의 삶을 쌓아가는 것이 아니다.
모신다는 것은 스승과 하나(일체)가 되겠다는 굳세고 진실한 의지의 표현이다. 제자가 자신의 편의만을 고려해 스승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외면하면, 어느 스승이 그를 제자라고 부르겠는가? 베드로가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 초막을 짓고 모시는 일은 마땅한 일이지만, 아직은 그럴만한 스승의 때는 오지 않았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럴듯한 이야기를 에둘러 뱉어내는 그의 언행은 스승이신 예수님을 떠보려는 악마의 소행(루카 4,1-13 참조)에 다름 아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주님을 모신다고 하면서 주님 뜻과 반대되는 말을 하고 반대되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면, 과연 주님을 모시는 사람 혹은 섬기는 사람이라고 큰소리칠 수 있을까? 주님 말씀 따르기를 손바닥 뒤집듯 하면서 자신의 못된 욕심을 주님의 뜻인 것처럼 외쳐대는 사람이 과연 주님의 참된 제자, 일꾼이겠는가? 자신의 명예와 부와 안위와 영달 앞에서 '예'하고 대답해야 하는데 '아니오'하고, '아니오'라고 해야 하는데 '예'라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과연 올바른 주님의 제자라고 불릴 수 있겠는가.
베드로가 자신의 처지도 모르면서 주제넘게 떠들어대고 있을 때, 구름이 일어 스승과 제자 사이를 철저하게 갈라놓았다. 그러면서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루카 9,35)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자는 스승의 말씀만을 듣고서 그대로 실행하면 곧 자신의 소임을 충실히 다 수행한 것이 아니던가. 주님의 제자라면 누구든지 자신의 처지나 입장을 먼저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주님의 제자라면 먼저 주님 뜻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충실히 수행해나가는 것이 참 신앙이요 참 제자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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